우즈도 박인비도 뛰어넘은 전인지의 '끝내주는 스윙'

민학수 기자 편집=뉴스큐레이션팀
입력 2016.09.20 08:55 수정 2016.09.20 09:44

올해 US 여자오픈에서 컷 탈락하고 리우올림픽에서도 기대에 미치지 못했던 전인지(22)는 어떻게 극적인 반전에 성공한 것일까.


부드럽고 정확한 스윙으로 그린을 공략하고, 위기 상황에서도 미소를 잃지 않으며 침착하게 헤쳐나가는 '전인지표 골프'가 골프 역사를 새로 쓴 것이다. '그동안 무슨 문제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확 달라진 모습이었다.

18일 프랑스 에비앙 레뱅의 에비앙 리조트 골프클럽에서 열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에비앙챔피언십을 최소타 신기록(21언더파)으로 제패한 전인지가 최종라운드 5번홀에서 샷한 후 공 날아가는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AP

전인지는 지난 7월 초 US 여자오픈에서 1라운드 73타, 2라운드 77타를 치고는 컷 탈락했다. 1년 전 우승했던 여자 골프 최고 권위의 대회에서 2라운드 만에 짐을 꾸리는 심정은 착잡했다. 스윙에 대한 자신감도 바닥까지 떨어졌다. 당시 전인지가 치는 공은 방향성이 떨어졌고 하늘 높이 솟구쳤다가 맥없이 낙하하는 경우도 많았다. 체중 이동이 안 되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 올 시즌 봄부터 전인지를 괴롭히던 허리와 어깨 부상이 원인이었다.

미국에 가면서 체중이 갑자기 불어난 것을 이유로 지적하는 이들도 있었다. 전인지의 스윙 코치를 맡고 있는 박원 골프 아카데미 원장은 "오른발 쪽에 체중이 남은 상태에서 임팩트가 이뤄지다 보니 공의 탄도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높았다"고 했다.

'최소타 메이저 우승' 전인지 "내 인생의 꽃은 아직 피지 않았다"

전인지는 주니어 시절 '배치기'를 하는 듯한 잘못된 스윙 자세가 몸에 배어 있었는데, 그 영향이 다시 나타났다고 볼 수 있었다. 전인지는 2013년 프로 데뷔 이후 많은 대회에 참석하다 보니 무리한 동작을 하게 됐고, 이는 부상으로도 연결됐다.

골프에서 자주 사용되는 속칭 '배치기'는 임팩트 동작에서 배를 쭉 내미는 동작이 나오며 몸이 뒤로 젖혀지는 듯한 자세를 말한다. 물론 전인지 수준의 선수가 주말 골퍼처럼 배치기를 하는 건 아니지만 프로들의 '미세한 동작' 하나는 큰 차이를 불러온다.

전인지는 스윙 크기를 간결하게 줄이고 임팩트 때에도 가볍게 맞힌다는 느낌으로만 치면서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올해 US 여자오픈 직후엔 미국에 함께 있던 아버지와 어머니가 "딸이 부담 없이 골프에만 전념할 수 있게 하고 싶다"며 귀국하기도 했다. 마음을 가볍게 해주려는 의도였다.


전인지는 리우올림픽을 앞두고 스윙 교정에 들어갔지만 허리와 어깨 부상은 쉽게 낫지 않았다. 올림픽 직전에는 국내 병원에서 소염 진통 주사를 맞았고, 미국에서 추가 치료를 받다 보니 대표팀 합류도 늦어졌다. 그렇게 나간 올림픽에서 메달권에 들지 못해 실망도 컸지만 오기도 생겼다고 했다. "골프에 대한 열정을 다시 느꼈고 4년 뒤 도쿄올림픽에서는 메달을 따야겠다는 목표도 생겼다"는 것이다. ▶기사 더보기

/에비앙

전인지, 우즈도 박인비도 뛰어넘다


골프의 새로운 역사까지 3m 남짓한 거리가 남아 있었다. 전인지(22)는 평소처럼 공 뒤에 서서 공이 홀로 빨려 들어가는 이미지를 생생하게 그려 보았다. 그리고 주저 없이 퍼터로 공을 밀었다. 그 공이 홀컵으로 빨려 들어가는 순간 카메라 플래시가 쉴 새 없이 터졌다. 21언더파 263타. 남녀 골프를 통틀어 메이저대회 최다언더파 기록이 완성되는 순간이었다. 18번홀 그린 옆에서 기다리던 선수들이 샴페인과 물을 뿌리며 달려들었다. 김세영 등 한국 선수들과 함께 여자 골프 세계 랭킹 1위 리디아 고와 브룩 헨더슨도 축하 대열에 가세했다.

'메이저 퀸' 전인지가 18일 프랑스 에비앙 레벵의 에비앙 리조트 골프클럽(파71·6470야드)에서 열린 미국 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시즌 마지막 메이저 대회 에비앙 챔피언십에서 대기록을 쓰며 우승했다. 전인지는 4라운드에서 버디 3개, 보기 1개로 2타를 줄이며 합계 21언더파 263타로 정상에 올랐다. 공동 2위 박성현과 유소연을 4타 차로 따돌렸다.

이날 전인지는 갖가지 대기록을 작성했다. 21언더파는 LPGA 투어 72홀 최다 언더파 기록이다. 이전 기록은 19언더파로 모두 5명이 보유하고 있었다. 1999년 나비스코 챔피언십에서 도티 페퍼, 2004년 브리티시여자오픈에서 카렌 스터플스(잉글랜드), 2010년 LPGA챔피언십에서 크리스티 커(미국), 2011년 LPGA챔피언십에서 쩡야니(대만), 2015년 위민스 PGA챔피언십에서 박인비가 이 기록을 세웠다.

전인지는 1992년 벳시 킹(미국)이 LPGA챔피언십에서 세운 뒤 24년 동안 깨지지 않던 72홀 최소타 기록인 267타(파71코스 17언더파)도 가볍게 깼다. 전인지는 또 지난해 US여자오픈 우승에 이어 올해 에비앙 챔피언십에서 2승째를 올리며 메이저 대회에서 첫 2승을 거둔 두 번째 선수가 됐다.

LPGA 투어에서 이 기록을 보유하고 있던 선수는 1998년 US여자오픈과 LPGA챔피언십을 우승한 박세리였다. 전인지는 이번 우승으로 LPGA 신인왕을 사실상 확정 지었다. 지난해 US여자오픈 우승자 자격으로 올해 LPGA 투어에 데뷔한 전인지는 16개 대회 만에 메이저 대회에서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올 시즌 3차례나 거듭된 준우승 징크스도 말끔하게 씻어버렸다. ▶기사 더보기

전인지, 프로 13승 중 메이저에서만 7승… 유독 강한 비결은?


전인지는 "코스 세팅이 까다로운 메이저 대회일수록 플레이가 재미있다"고 말했다. 메이저 대회는 깊은 러프와 빠른 그린을 기본으로 14개의 골프 클럽을 골고루 사용할 수 있는지를 테스트하는 코스 세팅을 한다.


전인지는 최장타 그룹에는 속하지 않는다. 하지만 260야드 안팎의 드라이브 샷을 꾸준히 페어웨이에 적중시키고 그린 적중률도 높은 편이다. 무엇보다 스코어를 지키는 쇼트게임과 퍼팅이 안정적이다. 이를 바탕으로 지키는 홀과 공격적으로 스코어를 줄이는 홀을 나누어 경기 운영을 한다. 이번 대회 전인지의 표정은 지난해 US여자오픈 등 미국과 한국, 일본에서 메이저 대회를 우승하던 때처럼 침착하면서도 밝았다.


전인지는 "올해 올림픽에 참가하면서 골프에 대한 열정이 살아났고 지난해처럼 즐겁게 경기할 수 있었다"고 했다. ▶기사 더보기

18일 프랑스 에비앙 레뱅의 에비앙 리조트 골프클럽에서 열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에비앙챔피언십을 최소타 신기록(21언더파)으로 제패한 전인지가 태극기를 몸에 두른 채 트로피를 들고 기뻐하고 있다./AP

돌풍 예고편 보여준 전인지


2016년 2월 미국 플로리다 오칼라에서 개막한 미국 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시즌 두 번째 대회인 코츠 챔피언십. 세계 랭킹 1위 리디아 고(19·뉴질랜드)가 시즌 처음으로 출전하며 시작 전부터 큰 관심을 끌었던 대회다.

정상급 선수들이 대거 참가했지만, 전인지에겐 이 대회가 더 특별했다. LPGA 투어 데뷔전이기 때문이다. 전인지는 지난해 여자 골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US여자오픈을 제패했지만, 그때는 LPGA 비회원 자격이었다.

전인지는 2월 4일 LPGA 정식 데뷔전에서 올해 일으킬 돌풍의 '예고편'을 보여줬다. 개막을 이틀 앞두고 심한 감기에 걸리고 알레르기 비염까지 번져 걱정했지만 경기에선 그런 기색이 드러나지 않았다.

대회 1라운드에서 전인지는 14개의 티샷 가운데 13개를 페어웨이에 정확히 떨어뜨렸다. 페어웨이 적중률이 92.85%다. 전인지는 이날 그린 적중률도 83.3%를 기록했다. 전반에만 3타를 줄인 전인지는 후반에도 버디를 하나 보태 4언더파로 김세영(23), 킴 카우프만(미국), 캔디 쿵(대만) 등과 함께 1라운드를 공동 2위로 마쳤다. 폭스스포츠는 "루키 전인지가 보기 없이 멋진 모습으로 데뷔했다"고 보도했다. ▶기사 더보기

조선일보 구독이벤트

오늘의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