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추천 도서] 거품 붕괴된 일본을 리얼하게 그린 '사채꾼 우시지마'… 진상훈 기자

진상훈 기자
입력 2016.09.14 09:00
진상훈 증권부 기자
사실 추천 도서를 고르기까지 적잖이 고민을 했습니다. 가볍게 읽을만한 책은 무엇이든 괜찮다는 연락을 받기는 했지만, 만화를 추천하는 것은 너무 파격적인 선택이 아닐까 하는 부담 때문이었죠. 아마 ‘사채꾼 우시지마’란 만화가 말초 신경만 자극하는 만화였다면 다른 책을 골랐을 겁니다.

망설임 끝에 이 책을 고른 이유는 바로 전(全) 편을 통해 이 만화가 지난 1980년대 후반부터 거품 경제가 붕괴돼 20년 넘게 지속되고 있는 불황으로 고통 받고 있는 일본의 실상을 너무나 현실적으로 그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껏 여러 책이나 매체, TV 등에서 거품 붕괴 이후의 일본 경제를 다뤘지만, 돈이 부족해 위기에 내몰리다 결국 마지막에는 사채의 덫에 굴복하게 되는 일본 국민들의 모습을 이 만화만큼 자세하게 묘사한 것은 없었다고 봅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만화는 일본의 사채업자를 주인공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주인공인 우시지마 가오루는 20대 초반의 이른 나이에 사채시장에 뛰어들어 몇 년만에 큰 돈을 모은 인물입니다. 여기서 우시지마가 운영하는 회사는 러시앤캐시나 리드코프 등과 같은 정식 인가를 받은 업체가 아니라, 어두컴컴하고 음습한 이미지의 불법 대부업체죠.

사채꾼 우시지마
지금까지 총 36편이 출간된 이 만화는 첫 편부터 독자들을 상당히 불편하게 합니다. 쇼핑 중독에 빠진 한 평범한 여성 회사원이 부족한 돈을 마련하기 위해 우시지마가 운영하는 ‘카우카우 파이낸스’를 찾은 뒤 점차 사채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결국 몸을 팔고, 마약 중독에 빠져 파멸하게 되는 내용이죠. 1회에서 우시지마는 차가운 미소로 “아주 쪽쪽 빨아주마”라고 이죽거리며, 보는 이들을 오싹하게 만듭니다.

이후에도 사채꾼 우시지마에는 불법 대부업자의 희생양이 되는 다양한 인간 군상들이 나옵니다. 주택담보대출과 생활비 부족으로 허덕이는 샐러리맨, 불황으로 빚을 갚지 못해 대부업체의 문을 두드리는 자영업자, 나이 40세가 가깝도록 직장을 구하지 못한 채 부모에게 기대는 취업준비생, 아르바이트로 연명하다 대박의 환상에 빠져 다단계 판매에 뛰어드는 대학생, 삶의 의지를 잃고 도박에 빠진 은퇴자, 생활비에 보탤 돈을 마련하기 위해 주식투자에 나섰다가 집까지 잃게 되는 가정주부 등이 사채업자인 우시지마의 고객으로 등장합니다.

이들에게는 모두 공통점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몇 만엔 정도의 소액 대출을 이용하다 점차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결국에는 대부분 씁쓸한 종말을 맞이하게 되죠. 빚을 갚지 못하고 파산하게 될 처지에 놓이자, 강제로 해외로 떠나는 원양어선 등에 팔려가는 처참한 말로를 맞이하는 인물들도 나옵니다.

이 책은 사채 쓰면 망한다, 재무건전성 강화하라는 등의 거창한 메시지를 직접적으로 전하지는 않습니다. 만화답게, 인물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묘사할 뿐이죠. 그래서 현재 일본이 겪고 있는 불황과 고통 받는 국민들의 모습을 더욱 현실감 있게 느낄 수 있습니다. 어딘지 모르게 만화 속에 등장하는 일본의 모습과 현재 한국이 처한 상황이 사뭇 비슷하게도 느껴집니다.

어린 시절 일본은 우리에게 부러움과 동경의 대상이었습니다. 근면함과 성실함이 몸에 밴 국민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눈부신 성장을 이루며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올라선 저력 등은 우리가 본 받고 따라야 할 일본의 모습이었죠.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요? 1980년대 이후 지금껏 불황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허덕이고 경제적 어려움으로 고통받는 국민들. 지금의 일본은 우리에게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저런 꼴을 당할 수 있다’는 반면교사(反面敎師)가 된 지 오래입니다.

즐거운 연휴에 이렇듯 우울한 내용을 다룬 책을 추천하느냐며 못마땅하게 생각하실 분들도 많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모처럼 한가한 시간을 이용해 거품 붕괴 이후 일본이 맞이한 씁쓸한 현실을 가벼운 만화로 천천히 둘러보고, 경기둔화와 내수 부진 등으로 어려움을 겪으며 조금씩 일본이 겪었던 고통의 시간들과 비슷한 모습을 띠고 있는 우리의 현실을 돌아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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