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 칼럼] 이세돌·알파고 對局, 기계 대리전 시대의 序幕

이홍렬 바둑전문기자
입력 2016.02.24 03:00
이홍렬 바둑전문기자
이세돌과 알파고의 바둑 대결에 쏠린 관심이 당초 예상보다 훨씬 더 뜨겁다. 이세돌이 이길 경우 상금이 무려 100만달러라고 발표돼 우리 바둑계가 껌뻑 죽었던 그날, 외신은 구글의 주가가 4% 넘게 뛰어 시가 총액이 단숨에 200억달러 이상 불었다고 전했다. 구글은 알파고를 개발한 딥마인드를 2년 전 4억여달러에 사들였다. 내달 9일 시작될 이번 행사와 관련한 뉴스가 서구권에서 연일 쏟아져 들어오고, 22일 한국기원서 열린 경기규칙 회견엔 유수의 외신 기자들이 자리를 메웠다. 바둑이라면 소 닭 보듯 하던 서양인들이 우리보다 더 난리 치는 형국이다. 이게 갑자기 무슨 조홧속일까.

이번 승부를 곰곰 뜯어보면 몇 가지 곱씹을 만한 의미가 담겨 있다. 도낏자루 썩히며 시간이나 죽이는 한낱 파적(破寂) 이벤트로 볼 일이 아니다. 우선 인간과 기계의 대리전이란 상징성이 부각된다. 다른 말로 하면 '인간 두뇌'에 대한 인공지능의 도전이다. 인류가 초월적 존재에 대한 꿈을 컴퓨터란 이름의 쇳덩이에 쏟아부어 온 지도 70여년이 지났다. 인간 스스로 자신을 위협하는 기계를 만들고, 그 기계와 인간이 벌이는 싸움 결과를 가슴 졸이며 기다리는 상황은 혼란스럽지만 이제 때가 무르익었다.

인공지능이 인간을 넘어서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이와 관련된 기대와 두려움이 이번 '흥행 돌풍'의 둘째 요소다.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은 인공지능의 발달로 2045년 무렵이면 모든 질병이 퇴치되고 인류가 불로장생의 단계에 들어설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다. 하지만 또 한편에 자리한 과학자들은 인공지능이 전 분야에 보편화될 25~30년 뒤엔 인류 직업의 절반 이상이 컴퓨터에 밀려 사라질 것이라고 경고한다. 이번 대결은 컴퓨터가 인간과의 주종(主從) 관계를 뒤집어 놓느냐, 인간에게 더 충실한 조력자가 되느냐 사이에서 벌어지는 '막간극(幕間劇)'일지 모른다.

셋째로 주목할 것은 이번 대결로 바둑이 누리게 된 극적 신분 상승이다. 알파고 개발자 데미스 하사비스는 "우주 내 원자 수 이상의 거대한 탐색 공간 속에서 직관, 상상력, 지적(知的) 깊이를 요구하는 바둑이야말로 인공지능 최적의 도전 대상"이라고 했다. 벽안의 신경 과학자가 바둑의 진면목을 이처럼 정확히 간파했다는 건 놀라운 일이다. 그 결과 서양 과학문명의 집적체인 컴퓨터와, 2500년 세월 동양 정신문화의 정수로 군림해온 바둑이 한 지점서 만났다. 이세돌·알파고 프로젝트는 인류 문화사에서 동서양이 이뤄냈던 다른 어떤 만남보다도 극적이고 짜릿한 결합이다.

바둑을 매개로 인공지능을 도약시키려는 서구 과학의 도전은 갈수록 가열될 조짐이다. 페이스북 최고 경영자 마크 저커버그는 올해 초 "우리는 6개월째 바둑과 씨름 중이며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말해 또 다른 '깜짝쇼'를 예고했다. 마이크로소프트 등 다른 IT 기업들의 바둑에 대한 관심도 큰 것으로 알려졌다. 앞으로는 인간 대 인간의 경쟁시대가 막을 내리고 인간보다 더 똑똑한 기계끼리 우열을 다투는 시대로 넘어가는 것은 아닐까. 그 경우 알파고·이세돌전은 '기계 대리전 시대'의 본격 개막을 촉발한 첫 착점(着點)으로 기록될 것이다.
알파고에 도전한 '이세돌기사'는 누구?
조선일보 A31면
공시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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