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두식 칼럼] "공장을 멈추고, 물류를 멈추고, 세상을 멈추겠다"

입력 2015.12.09 03:20

'나라 마비시키겠다'고 공언, 한상균 위원장과 민노총에
한 달 가까이 온 나라가 속수무책으로 끌려다녀
극단적 인물·세력이 뒤흔드는 사회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어

박두식 부국장 겸 사회부장
필자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하 민노총) 위원장 한상균씨와 일면식(一面識)도 없다. 그가 지금껏 어떤 삶을 살아왔고, 그가 견디어 내야 했던 삶의 무게가 어느 정도였는지도 세세히 알지 못한다. 그러나 지난 한 달 가까이 거의 매일처럼 '한상균'이란 사람과 씨름하며 지내온 것 같다. 싫든 좋든 한씨가 언론에 가장 자주 등장하는 '뉴스의 인물'이 됐기 때문이다.

한씨는 지난달 14일 7시간 가까이 서울 도심(都心)을 무법천지로 만든 불법·폭력 집회를 이끈 인물이다. 그는 폭력 집회 이틀 후 서울 조계사에 들어갔다. 오늘로 조계사 은신 24일째다. 그는 이곳에서 각종 투쟁을 선동하고 있다. 조계사 주변은 이런 한씨의 일거수일투족을 좇는 기자와 경찰로 가득하다. 조계사 주변만 그런 게 아니다. 이 나라 전체가 '한상균 문제'에 발목을 잡힌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 게 한두 번이 아니다.

필자가 보기에 한씨는 극단(極端)으로 내달려온 사람이다. 노동계에서도 '한상균'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단어가 '총파업' '강경 투쟁'이라고 한다. 그가 세상에 처음 알려진 것은 2009년 쌍용차 파업을 통해서다. 그는 당시 민노총 금속노조 쌍용차 노조지부장이었다. 한씨는 대량 해고에 맞서 77일에 걸친 파업을 이끌었다. 일부에서 '옥쇄(玉碎) 투쟁'이라고 부를 만큼 한씨가 주도한 파업은 통상적인 노조의 파업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 시절 경기도 평택의 쌍용차 파업 현장은 전쟁터와 다를 게 없었다.

결국 공권력이 투입된 상황에서 노·사(勞·使) 협상이 타결됐고, 그 직후 한씨는 구속됐다. 이 일로 3년 형기를 마치고 출소한 한씨는 해고자 복직 등을 요구하며 쌍용차 공장 옆 송전탑에 올라가 171일에 걸친 고공 농성을 벌였다. 일터에서 쫓겨난 그의 절박한 사정을 애써 깎아내리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한씨가 회사를 떠난 후 쌍용차는 크게 달라졌다. 대주주가 바뀌었고 쌍용차노조는 민노총에서 탈퇴했다. 만성적인 실적 부진과 적자에 시달리던 회사도 서서히 정상 궤도에 접어들었고, 6년 전 회사를 떠나야 했던 근로자 일부도 다시 돌아왔다. 한씨는 이 흐름과는 정반대되는 방향으로 갔다. 한씨 스스로 선택한 길이다.

한씨는 1년 전 이맘때 민노총 위원장으로 선출됐다. 민노총 역사상 직선으로 뽑힌 첫 위원장이다. 그는 선거 구호로 '총파업'을 내걸고 "공장을 멈추고, 물류를 멈추고, 세상을 멈추겠다"고 다짐했다. 그가 지난달 집회에서 외쳤던 "나라를 마비시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자"라는 선동 구호는 어쩌다 나온 말이 결코 아니다.

한씨는 민노총 내에서도 주류가 아니었다고 한다. 민노총 주류는 헌법재판소가 종북(從北) 혐의 등을 인정해 해산 결정을 내린 통합진보당과 줄곧 연대해온 세력이다. 민노총 주류의 세(勢)가 주춤해지자 위원장으로 뽑힌 인물이 바로 한씨다. 하나의 극단이 물러난 자리를 또 다른 극단이 차지한 셈이다.

따지고 보면 민노총이란 조직 자체가 상식의 눈높이에서는 선뜻 납득하기 힘든 기형적 존재다. 민노총의 주축은 대기업 노조, 전교조, 전공노(전국공무원노동조합) 등이다. 하나같이 수백만 젊은이가 선망하는 직장이다. 이들이 일하고 있는 그 직장에 들어가지 못하고 취업의 관문 앞에서 좌절한 젊은이들은 비정규직의 불안하고 힘든 삶을 살아가고 있다. 민노총이 과연 이 나라의 약자(弱者)들을 대변할 자격이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오히려 민노총 소속 노조들에서는 조합원 자녀 우대 채용을 요구하거나 하도급 업체에 상납을 요구하는 이른바 '갑(甲)질 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다.

고용노동부 집계에 따르면 2014년 말 현재 우리나라의 노동조합 조직률은 10.3%다. 근로자 10명 중 1명 정도가 노조에 가입했다는 뜻이다. OECD 국가 중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다. 노조원 중 33.1%인 63만여명이 민노총 소속이다. 오히려 민노총 같은 상급 단체에 속하지 않는 미(未)가맹 노조가 지난 10년 사이 10배 가까이 늘었다. 대기업·교사·공무원 노조가 주축을 이룬 민노총이 노동계 전체를 대변한다고 볼 수 없는 게 지금의 노동계 상황이다. 그런데도 한씨를 비롯한 민노총 간부들은 입만 열면 '2000만 노동자'를 외치고 있다.

머지않아 한씨의 조계사 장기 은신도 끝나게 될 것이다. 그렇다 해도 '세상을 멈추겠다'던 한씨의 계획이 실패했다고 할 수 있을까. 지난 한 달 이 나라는 완전히 멈춰 서지는 않았지만 '한상균'이라는 돌부리에 걸려 앞으로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했다. 이 정부가 내걸었던 노동 개혁 법안은 사실상 실종됐고, 공권력은 조롱의 대상이 됐다. 극단이 나라 전체를 얼마든지 뒤흔들 수 있다는 것도 보여줬다. 정말 답답한 것은 '한상균 이후 또 다른 극단'이 다시 등장할 게 뻔히 보이는데도 이 나라 정치·경제·사회 리더십은 이번에도 아무 대책 없이 시간을 또 허송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조선일보 A3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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