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수의 인터스텔라] 과욕의 승부사, 노희영 "내 경쟁력은 최고의 눈과 혀"

김지수 대중문화전문기자
입력 2015.07.25 07:00 수정 2016.08.30 12:02
“CJ의 앨리스, 마녀 노희영입니다. 마녀는 여러가지 일을 합니다. 사람들을 들볶고 고문하기도 하죠. 정말 중요한 순간에 요술을 부리고 그 요술로 사람을 살릴 수도 있습니다. 나는 동기를 부여했을 뿐입니다. 원래 당신들이 할 수 있었던 일입니다.”_'HINO's RECIPES' 중에서.

노희영 히노컨설팅펌 대표는 외식업계 신의 손이라고 불린다. 노 대표는 최근 YG 엔터테인먼트 양현석과 손잡고 오픈한 삼거리 푸줏간에서 포즈를 취했다./ 이진한 기자
나는 한때 노희영의 손바닥 안에서 놀았다. 비비고에서 그녀가 짠 메뉴대로 밥을 먹고, CGV에서 그녀가 마케팅한 영화(예컨데 ‘설국열차’나 ‘명량’)를 보았다. 투썸 플레이스 빈티지 의자에 앉아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생일엔 스테이크하우스 빕스나 파머스 베니건스에서 한턱 쏘곤 했다. 퇴근 후엔 올리브 영에서 화장품을 사고, 슈퍼 장바구니엔 아이들에게 줄 마켓오 리얼 브라우니를 담으며 뿌듯해했다. 일요일 오후엔 뚜레주르에서 잡곡빵을 고르고, 밤에는 남편과 올리브TV에서 그녀가 출연하는 ‘마스터 셰프 코리아’를 보고 침을 흘리며 잠이 들었다.

내가 먹고 마시고 즐기는 라이프 스타일의 8할이 그녀가 만들거나 리노베이션한 브랜드에서 이루어졌다고 생각하니, 일면 소름끼치면서도(어떻게 나의 기호와 나의 움직임을 알았지? 내 뱃속과 머릿속을 스캐닝했나? 조지오웰의 빅브라더 소설 ‘1984’나 짐 캐리의 몰래 카메라 영화 ‘트루먼 쇼’가 생각나는군!) 호기심이 일었다.

어떻게 한 사람이 이렇게 많은 브랜드를 런칭하거나 리노베이션할 수 있을까? 그리고 오리온과 CJ라는 대기업에서 브랜드 전문가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그녀가, 그 명성에 못지 않을만큼 욕도 먹을만큼 먹은 그녀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상상력과 마녀의 추진력을 지닌 그녀가, 2014년 9월 세금 문제로 CJ에 사표를 낸 후 어떤 상념에 사로잡혀 있을지 궁금했다.

물론, 그녀가 백수인 채로 있을 리는 없다. CJ에 사표를 내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전화한 아워홈의 구지은 부사장과 손잡고 인천 공항 식음료파트 푸드 엠파이어 컨설팅 일을 시작했고, YG엔터테인먼트의 양현석 대표와 조인트 벤처 YG푸드를 설립해서 프리미엄 돼지고기 식당인 삼거리 푸줏간을 런칭했다. 지난 4월에는 KFC의 프리미엄 버거, 마이 징거를 출시해 매출 고공행진을 일으켰다.
노희영의 이런 행보는 호사가들을 당황시켰다. 너무 잘 나가서 잠시 세워 속도 위반 딱지를 끊었는데, 아랑곳하지 않고 차를 바꿔 더 달리는 식이었다. 독이 오를 줄 알았는데 오히려 물이 올랐다. 당분간 노희영이라는 전차를 멈출 사람은 없어보인다. 그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는 “독보적인 눈과 혀로 급이 맞는 식모가 되고 싶다”는 화력을 갖췄다. “오너 곁에서 오너질 하지 않고 오너십으로 일했다”는 자부심의 엔진을 달았다.

노희영이 일하는 사무실은 홍대 삼거리 푸줏간 건물 3층에 있었다. 대기업에 임원으로 있을 때도 사무실 가구를 자기 것으로 채웠다던 미적 고집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1950년대 빈티지 가구들과 함께 서재엔 미국 시절부터 함께 해서 나달나달해진 옛날 요리책 ‘조리’, 그리고 현재 삼거리푸줏간 때문에 한껏 ‘꽂혀 있는’ 돼지 인형 오브제들이 가득했다.

겨울 호빵처럼 희고 동그란 얼굴에 1920년대 독립운동가들이 쓸 법한 의고적인 까만 뿔테 안경, 그 너머에 예사롭지 않게 빛나던 눈빛이 인상적이었다. 그것이 야심가의 눈빛일까, 이상주의자의 눈빛일까.
고민하는 사이 잠금 장치가 고장난 수도꼭지처럼 정수 필터도 없이 노희영의 통렬한 재담이 터져나왔다. 그것은 때론 로열 패밀리에 대한 충성심 어린 방언이었고, 과욕의 승부사로, 스캔들의 중심을 통과해 온 스스로에 대한 진솔한 변론이었다.

노희영은 구지은 아워홈 부사장과 손잡고 인천국제공항에 푸드 엠파이어를 성공적으로 오픈했다. 뉴욕 파슨스를 졸업한 그녀는 단추 디자이너로 패션계에 들어왔지만, 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까지 천부적인 외식 비즈니스 감각으로 청담동 레스토랑 붐을 이끌었다. / 이진한기자

-구지은 전 부사장이 보직 해임 후 7월 15일 오픈한 인천 공항 아워홈 푸드 엠파이어를을 두고 SNS에서 “감격스럽다”고 했습니다. 범 LG가로 분류되는 아워홈의 최근 인사 사태와 함께 모든 이슈의 한가운데 계신데, 소감이 어떠신가요?

“구지은 부사장 하고는 여전히 너무 친해요. 인천 공항 아워홈 엠파이어는 정말 감격스러운 우리 작품이고, 여전히 저는 10월 2차 오픈을 진행중입니다. 구 부사장하고는 이번에 밀라노 박람회 보러 같이 다녀 왔어요. 여러 부분에서 함께 상의도 하고 조언도 주고 받아요.
전 로열 패밀리들의 가족 내 역학 관계, 사내 정치... 그런 거는 잘 모르지만, 구 부사장 곧 돌아오리라 생각해요. 엠파이어를 자기가 돌아와서 곧 완성할 새끼라고 생각하니까 그렇게 홍보도 하는 거죠. 밖에서는 뭐라고들 하시나요? 노희영과 사이가 안 좋아서, 구지은 부사장과 틀어져서 김태준 사장도 나갔다고 말들 많다고들 하시던데… CJ 있을 때도 이재현 회장님 이미경 부회장님 일을 저하고 너무 엮으세요.”
-오너 최측근 실세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왔으니까요.

“저는 그런 거에 자격지심 같은 게 있어요. 오너들의 일은 오너들의 일이고 저는 그저 일만 열심히 하는 사람입니다. 그렇게 전략적이고 정치적인 사람이 아니에요. 아워홈도 그래요. 구지은 부사장이 잠시 나가있을 때, 그 공석에서도 “내가 어떻게 해볼게”, 그게 내 나름의 도리인 거죠. 큰 회장님의 맘은 저희도 몰라요. 사자가 새끼 훈련하듯…. 한번 냉정하게 끊어가시는 건지…

-그러기에는 타이밍이 너무 절묘하지 않습니까?

“그건 인정해요. 사업이 대박이 나거나 오너 스캔들이거나 항상 말이 많은 상황에 제가 있었죠. 이번에 푸드 엠파이어도 그래요. SPC랑 CJ랑 아워홈 셋이 붙었는데, SPC랑 CJ는 개별적인 매장이지만, 아워홈은 브랜드들을 모아서 보여주니까 몇 백명이 모여서 줄 서고 사람들이 볼 때 한 마디로 대박이 난 거죠.”

-이슈의 중심에 있는 것을 즐기는 편인가요?

“내가 뭐 하나 오픈하면 적도 오고 우방도 와서 일단 북적이니까 뉴스가 되는 편이예요. 친한 사람은 “잘 돼라”고 오고, 안 친한 사람은 “어디 잘 되나 보자”고 오고. 어쨌든 사람이 몰려드는 거죠. 이번에 구부사장이 그렇게 되고 나서, 절더러 “당신은 구부사장이 데리고 온 사람인데 왜 일하냐?” 그래요. 저는 개인적으로는 오랜 친구지만, 2차 오픈까지 계약을 한 사람이예요. 일은 일이죠.”

-아워홈의 김태준 전 사장과는 동고동락한 사이 아니었나요?

“김태준 사장은 진짜 식품 역사상 대한민국 최고입니다. 삼성 공채로 입사해서 제일제당, 삼성자동차 있다가 CJ에서는 식품본부장으로 이재현 회장 밑에서 손발 맞춰 저와 비비고도 같이 한 분이예요. 그분도 저도 오너 없이는 컨텐츠 추진력이 없다는 데 동의하고, 이미경 부회장님 나오면서 같이 나왔어요. 그때도 김태준 사장은 아워홈, 신세계, 대상에서 다 스카웃 1순위였어요. 그분이 다시 가고 싶은 길을 가신 거예요. 저보다 한참 선배인데, 저와 얽혀 괜히 이런저런 억측을 낳게 해서 죄송할 뿐이죠.”

-CJ에 있을 때 새벽에도 장문의 문자로 직원들을 호통치는 강도 높은 업무 스타일로 유명했습니다.

“제가 성질 더러워서 직원들 상처 받았다는데, 사실 관계에서 상처는 늘 주고 받는 거잖아요. 특히 조직에서는. 제 기억에 전 상처를 주긴 했어도 모욕을 준 적은 없어요. 그런데 그런 말이 꼭 저와 일도 한번 안해본 사람한테서 나온다는 게 문제에요. 제 자리와 제 스타일이 오해가 많을 수밖에 없다는 거 인정해요. 그래도 저는 이거 하나는 자부심이 있어요. “노희영하고 같이 일하면서 당신이 성장했냐?” 그거에 예스, 하는 사람이 훨씬 많다는 거죠. 제가 너무 강하게 밀어붙이고 상처를 줘서 미안하지만, 키우지 않고 모욕감만 주는 사람보다 낫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때론 상처를 선하게 이용해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마녀를 왔다갔다 해서 아랫 사람이 받들기에 힘든 면이 있다고도 들었습니다.

“그런 저의 마녀 기질을 한번 통과하면 저를 사랑하게 될 거라고 확신해요.”

-자기 만의 리더 철학이 있습니까?

“저는 리더는 연민이 있어야 한다고 봐요. 저는 사람한테 그 마음이 있어요. “ 저 친구가 커야되는데…” 그래서 더 모질게 하는 지 모르겠어요. 지금도 똑같아요. 나를 사랑하고 존경할 생각은 하지도 말라고. 그냥 너의 성장만 기억하라고. 저도 이재현 회장님, 이미경 부회장님에게 똑같은 욕 먹었지만, 한번도 기분 나쁘다고 생각한 적 없어요.”

-그래선지 오너들의 편애를 받아왔고 조직 내부의 견제도 만만치 않았지요?

“어쩌면 난 종으로 태어났는 지도 모르겠어요. 주인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종. 그런데 주인이 바뀌면 또 바뀐 주인에게 똑같이 해요(웃음). 오리온에서 이화경 부회장, CJ에서 이재현 회장, 이미경 부회장 모실 때나 YG에서 양현석 회장 모실 때나 의전 다 하고 식단 다 짜드리고. 그런데 그게 사랑받기 위해서냐? 아니에요. 그게 내 책임, 내 할 도리라는 생각입니다.

내가 음식하는 사람으로 이 기업에 들어왔는데, 내 보스 음식 관리하는 건 내 기본이고 내 실력이예요. 나는 보스들이 남긴 잔반까지도 사진 찍어서 봐요. 그리고 뭐가 문제였는지 꼭 물어보고 그분들 피드백을 들어요. 간이 짰는지, 구성이 심심했는지… 그 반응을 보고 다음을 준비해요.

-일종의 편집증 증세 같은 게 보이는데요.

“그런데 그런 자세로 고객들을 대해요. 그래서 성공확률도 높다고 봐요.”

-YG 엔터테인먼트 양현석 대표와는 어떻습니까?


“양 회장 하고는 그런 다짐을 했어요. 우리가 밥집 하나 둘 낼려는 게 목표가 아니다. 삼거리타운에 K-pop, K-culture 다 믹스해서 복합문화공간을 만들자. 레스토랑, 클럽, 펍, 싸이가 하는 라면 가게 … 내 푸드 컨텐츠와 YG 컨텐츠를 합쳐보자는 거죠. 어쩌면 나는 작은 CJ를 만들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어요. 내가 평양 냉면을 아주 좋아하는데, 냉면까지 해서 우리가 평양에 ‘평양 삼거리 1호점’을 내고 싶은 거예요.”


YG엔터테인먼트 양현석 대표는 노희영이 CJ를 그만두자마자 가장 먼저 전화해서 조인트 벤처를 제안했다. 그들이 함께 머리를 모아 오픈한 프리미엄 돼지고기 식당 삼거리 푸줏간은 홍대 1호점에 이어 미국, 태국 등 해외 체인 오픈을 앞두고 있다.
요리를 하는 사람들조차 메뉴 개발에 대해 오해하는 부분이 있다. 메뉴 개발, 제품 개발이 익숙하지 않은 새로운 맛을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것은 오산이다. 노희영은 “맛있는 음식을 조금 더 맛있게 만드는 것이 가장 훌륭한 메뉴 개발”이라고 말한다.

세상에 아예 없는 맛을 만들어내는 것은 발명이지 개발이 아니다. 좋은 메뉴는 대부분 시장을 끊임없이 관찰한 뒤 한두 가지의 결정적 아이디어를 더했을 때 탄생한다. 그리고 아주 익숙하고 친근한 맛에 약간의 신선한 변화를 가미했을 때 오히려 큰 효과를 얻는다.

노희영은 자신을 창조가가 아니라 재창조자, 발명이 아니라 개발하고 조합하는, 소비자와 소통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마케팅의 답은 어렵지 않다. 소비자가 움직이는 곳에 정답이 있다”고.

-평양에 평양 삼거리 1호점을 내겠다는 건 근사한 발상입니다. 또다른 계획이 있습니까?

“저는 CJ 전과 후로 나뉘어요. 애프터 CJ 작업이 KFC 마이 징거 런칭부터 해서 아워홈 푸드 앰파이어, 삼거리 푸줏간이예요. 그리고 여의도 전경련 빌딩에 가을에 죽여주는 컨셉의 레스토랑을 오픈해요. 51층 전체를 농장으로 만들고, 거기서 수확한 재료로 50층의 레스토랑을 운영할 거예요. 이제 전 세계 미식의 흐름은 신선한 식재료예요. 도심 한가운데 농장이 있어야 되는 거죠.”

-조직에서 나온 후에도 전혀 기가 죽지 않는군요.

“조직이라는 게 무서워요. 내부에 있을 때는 동지지만 개인이 떨어져 나오면 적이 돼요. 그게 조직의 특성이예요. CJ에서 짤린 거냐? 나온 거냐? 말들 많지만, 전 보스가 사라진 조직에서 일할 의욕을 못 느꼈어요. 그리고 저는 제 스스로 좌절하는 꼴이 싫어서 사표낸 다음날부터 전력질주했어요.”

-탈세에 대한 이야기는 안할 수가 없군요. 레스토랑 컨설팅업체 ‘히노컨설팅펌’을 운영하면서 3년간 세금 5억여 원을 포탈한 혐의로 올해 6월 벌금 3000만 원을 선고받았지요. 검찰 소환될 때, 머플러로 얼굴을 가린 사진이 인터넷에 돌았습니다. 여로모로 타격을 받았을 것 같습니다.

“그랬지요. 세금 지식 미비로 그런 일이 생겼으니 반성하고 있어요. 그런데 나는 돈에 대해서는 정말 1원도 몰라요. 내 카드도 다 직원들이 한도를 관리해줘요. 개인 회사도 어머니 명의로 되어 있었고. CJ에서 내가 고문으로 있었는데, 그게 통상적으로 기업에서는 한직인데, 저는 그에 비해 월급을 많이 가져간다고 생각해서 국세청에서 저를 회사 비자금으로 의심을 했던 거 아닌가 싶어요.”

-멘탈이 굉장히 강한 편이네요.

“쓰러지는 거 보여주고 싶지 않았어요. 강해서 아니고 약해서 그래요. 약해서 약한 모습 보여주기 싫은 거지요. 그러면 진짜 쓰러질 거 같아서. 다행히도 신이 저를 잘 세워주셨어요. 어쩌면 사람을 성공시키는 건 컴플렉스와 적이예요. 그게 사람의 능력을 반전시켜요. 그걸 받아들여 싸우면 스스로를 뛰어넘는 거고, 포기하면 거기서 멈추는 거지요.

전 하고 싶은 일이 진짜 많아요. CJ에 너무 감사한 게 KFC할 때 CVC라고 세계 3대 펀드 회사에서 제 포트폴리오를 보고 이게 한 사람이 다 한 게 맞냐고 그래요. 그만큼 경계 없이 일을 했어요.

왜 그런가 하면 난 사고 자체를 월급쟁이처럼 안 하고 오너처럼 해요. 그런데 월급쟁이가 오너처럼 하면 욕을 먹어요(웃음). 그러면 저는 이렇게 말해요. 나는 ‘오너질’을 하는 게 아니고 ‘오너십’을 발휘하는 거라고. 그건 누가 아느냐? 오너들이 알죠. 그래서 오너들에게 사랑을 받았고 그래서 후회가 없어요.

나는 전화기 2개를 가슴에 꼭 얹고 잠을 자요. 혹시 내 보스가 하는 전화를 못 받을까봐.”

-그런 요구를 아랫 사람에게 똑같이 하셨죠?

“그렇지요. 그래서 우리 엄마가 명언을 하셨지요. “그 사람들은 처자식을 위해 회사를 다녀. 너는 오너를 위해 회사를 다니는 거고.” 나는 급이 맞는 식모가 최고라고 생각해요. 최고의 식모가 되고 싶었어요.”

-그런 마인드라면 대기업에서 제안이 빗발쳤겠습니다.

“너무 많았죠. 그런데 지금은 조직에 들어 앉고 싶지 않아요(웃음). 컨설팅하는 걸로 족해요. 내 돈 투자한 YG하고만 할 계획이예요. 목표는 라이프스타일이지요. 다행히 CJ에서 음식, 패션, 방송, 영화 다 다뤄봤어요.”

-노희영의 경쟁력은 뭐라고 보나요?

“내 경쟁력은 눈하고 혀예요. 시각적으로 기억하는 능력이랑 혀에 저장하는 능력. 나는 아침에 이를 닦을 때 치약 맛을 다르게 느껴요. 매운 거 먹었을 때, 치즈 먹었을 때, 자장면 먹은 날 각각 혀가 다르게 반응해요. 수건으로 얼굴을 닦아도 이게 몇 번 빤 건지 다 느껴져요.”

-어린 시절부터 단련된 건가요?

“어릴 때 내 별명이 “좀 더 자세히 얘기해 봐”였어요. 그 때는 연속극 보고 놓치면 구전으로 들어야 했는데, 그럴 때 저는 항상 구체적인 묘사를 원했어요. 뭘 입고 뭘 먹고 어떤 공간에 갔는지.

어머니 아버지 영향을 진짜 많이 받았어요. 자식은 부모의 50% 이상을 받아요. 집착의 핏줄도 그렇게 물려받았죠(웃음). 엄마는 내가 뭘 먹었는지 화장실은 잘 가는지, 내 뱃속을 다 알아야 안심이 되시는 분이에요. 아버지는 타고난 미각의 소유자세요.”

예민한 미각은 어려서부터 노희영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노희영의 아버지는 매일의 끼니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분으로 일주일에 한번은 반드시 가족과 함께 외식을 했다. 아주 꼬마였을 때부터 유학을 떠나기 전인 10대 중반까지 아서원, 한일관, 파인힐 등 이름난 요릿집은 안가본 적이 없을 정도다. 사업을 하며 해외에 오갈 일이 많았던 아버지는 해외에서 맛본 새로운 음식을 한국에 돌아와 직접 요리하며 가족에게 선보였다.

아버지의 스키야키는 다시마와 가다랭이포를 우려낼 때도 군더더기 맛을 없애기 위해 한번 더 체에 거른다든지 간장, 설탕, 맛술로 기본 맛을 내고 무를 넣어 시원한 맛을 더한다든지 당신의 방식을 이용했다. 이런 아버지의 레시피는 제일 제면소의 스키야키에도 응용됐다. 색에 민감하고 맛에 예민한 감각, 먹을거리에 대한 관심과 애정. 그 모든 것이 그녀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미국 유학시절부터 보고 또 본 요리책 ‘조리’. 이 책 한권이 노희영의 오리지널 레시피북이 됐다. 노희영은 90년대 청담동 레스토랑 1세대로 시작해 퓨전 레스토랑 궁, 도산 공원 느리게 걷기, 유기농 면 레스토랑 호면당으로 패션 피플들의 까다로운 입맛을 사로잡았다. / 이진한 기자

-오리온에 갈 때는 백지수표를 받았다는 말도 돌았습니다.

“아니에요. 제가 제 브랜드 마켓오를 만들어서 오리온에 팔았어요. 베니건스를 웰빙 가미된 파머스 베니건스로 리노베이션해서 첫 달에 3억에서 6억으로 수익도 크게 냈고. 그런데 딱 1년이 지나서 이화경 부회장이 저를 믿고 불러서 오리온 계열사 대표하라고 그래요. 전 싫다고 그랬어요. 난 사장 싫고 초코파이 같은 거 하나 만들어 보고 싶다고. 그렇게 20명 되는 공장 아저씨들 하고 쿵작쿵작 해서 만들어 낸게 마켓오의 대표 과자 초코 브라우니예요. 그 때 1년 목표 100억을 해내라고 했는데, 제가 첫 달에 52억을 했어요. 그리고 나서 오리온에서 내 세상이 왔지요.”

노희영은 늘 좋은 타이밍에 바라던 기회를 얻었다. 대중이 퓨전 요리에 눈뜨기 시작할 때 레스토랑 궁을, 느림에 관심이 생겨날 때 카페 느리게 걷기를, 웰빙과 유기농 트렌드가 대두될 때 마켓 오를 맡게 된 것이다.

마켓오는 다각화 기업의 대표적인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건강한 식재료 과자 브랜드로 출발했지반, 친환경 의류나 리빙브랜드가 될 수도 있고 같은 철학을 공유하는 출판 문화 브랜드가 될 수도 있다. 철학이 깃든 브랜드는 스스로 성장하고 뿌리가 같다면 얼마든지 변형될 수 있다. 그녀가 항상 고민하고 완성하고 싶은 ‘맛있는 건강’이라는 철학은 마켓오에서 시작되었고 아직도 진행중이다.

-CJ와 오리온에 양다리를 걸치는 오버랩 시기가 있었습니다. 기업 역사상 전무후무할텐데요.

“이미경 부회장은 사적으로 알고 있었어요. 그런데 비빔밥 비즈니스를 하고 싶은데 조언을 좀 달라고 하더라구요. 그런데 들어보니까 딱 제가 해야 될 일이에요. 어릴 때부터 맥도날드 보면서 글로벌 한식 브랜드 한번 해보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제가 이화경 부회장한테 부탁을 드렸어요. 그 때 임원들이 다 말도 안된다고 반대했는데, 그 분이 그러셨어요. “사람을 크게 풀고 크게 쓰자. CJ에서 배워와서 우리 회사에 쓰자.”

-그런데 그렇게 1년을 겸직 하고, CJ로 가셨죠?

“당시에 오리온이 온미디어와 베니건스를 다 팔았어요. 저로서는 딜레마였지요. 갑자기 부사장 발령나고 벤츠500 차량이 나오고 그런 것도 스트레스였어요. 뻔한 임원 회의 참석하는 게 제일 고역이었어요. 오리온에서는 할만큼 다 했고, 그래서 부회장님에게 “저는 새로운 거 하고 싶은데, 제 꿈이 CJ에 있다”고 말씀드렸더니 놓아주셨어요(웃음).”

-오너를 난처하게 만드셨군요.

“저도 울고 부회장님도 우셨지요. 나는 내가 미치는 일을 해야 해요. 그래서 아침에 일어날 때 행복해야 돼요. 청년들에게도 나는 그렇게 ‘미쳐서 행복한 사람’으로 모델이 되고 싶어요. 나하고 지금 함께 일하는 회사 식구들도 그런 나를 믿고 오리온에서 CJ를 거쳐 여기까지 따라왔어요. CGV 상무, 부장도 저랑 같이 나와서 일해요. 저는 진짜 저를 알면 욕할 수 없다고 봐요. 저는 사람에 대한 연민이 진짜 많아요. 내가 클 때 너도 같이 크자, 그게 제 모토예요.”

-과욕의 승부사 기질이 있으세요.

“나를 위해서는 안 해요. 좋은 음식이나 좋은 문화를 위해서만 해요.”

-지속적으로 프리미엄을 추구하는 이유는 뭔가요?

“저는 그런 게 문화라고 보는 거예요. 밥이 그냥 밥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건강, 취향, 스타일을 녹여내는 게. 비비고, 계절밥상, 마켓오, 투썸플레이스 그런 게 다 내 스타일이고 거기서 또 진화해야 된다고 봐요. YG에서는 또 다른 모습 보여드려야죠. 내가 한 걸 카피하는 게 제일 못난 짓이니까.

YG에 직접 투자한 것도 이제 더 이상 시집은 안가겠다는 결심입니다. 대리모처럼 애 낳아 놓고 나오는 거 이제는 그만하고 싶어요. 삼거리푸줏간은 내가 투자해서 낳은 내 아이니까.”

-그런 생각이라면 남의 집에서 크는 아이에게 간섭 꽤나 하고 싶을텐데요.

“그래서 투썸플레이스 지나가다 뚜레주르 지나가다 보고 예전 직원들에게 문자 보내서 호통을 쳐요. 그런 짓 그만해야지요. CJ에서 ‘설국열차’ ‘명량’ 다 마케팅하면서 영화 일도 했기 때문에 지금도 개봉작은 다 찾아봐요. 집에서 TV 4~5개를 한꺼번에 켜놓고 봐요. 궁금한 걸 못참는 성격이에요.”

스스로를 카피하지 않고 다른 방식의 혁명을 계속 일으키겠다는 노희영./ 이진한 기자

-여자로서 어떤 사람인가요?

“전 아주 여성스러운 사람이에요. 다만 사주를 보면 80세 노인이 3살 아이를 업고 있는 형상이라 어떨 때는 심오하고 어떨 때는 말도 안되는 떼를 쓰는 그런 이중성이 있지요.”

-스스로를 혁명가라고도 칭했는데…

“제가 체 게바라를 좋아하는 데, 그 분이 혁명이 끝나고 장관할 때는 벤츠를 타고, 그만두고 나서는 또 노동자와 어울리고 그렇게 파격적으로 살았어요.”

-프레임에 갇히지 않았다는 데서 경의를 표하는건가요?

“혁명은 혁명가에게! 정치는 정치가에게! 그 태도가 멋지다는 거죠. 저는 회사를 운영하는 대표가 아니라 새로운 것을 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계속 라이프 스타일 혁명을 일으키겠다는 거지요. 기업에서 사회에서 안정을 원하고, 이 정도면 됐다, 그러면 저는 물러나야지요. 그런데 지금 기업은 혁명 없이는 살아 남기 힘드니까 한동안 이어지겠지요.

저는 뼛속까지 한국인이라 한식, 한옥, 한류를 다 좋아해요. 저는 스스로를 카피하지 않기 때문에, 다른 방식의 혁명을 계속 일으킬 거예요.”

-어떤 면에서 도전 중독자 같습니다.

도전 좋아하지만, 그 도전에도 원칙이 있어요. 저는 무언가 상상할 수 있는 걸 좋아해요. 그래서 JP모건이 부대찌개 놀부 브랜드를 사서, 저한테 컨설팅 의뢰했는데 그건 거절했어요. 그림이 잘 안그려지더라구요. 또 지는 게 뻔한 싸움도 안 해요. 오리온에서 60억 들여서 런칭한 레스토랑 미스터 차우 바꿔달라고 했을 때도, 저는 그 대신 내가 만든 마켓오를 사라고 했어요. 그 마켓오가 저를 스타로 만들어줬고, CJ가 날개를 달아줬죠.

-대기업이 없었으면 노희영이라는 브랜드는 어떻게 됐을까요?

“그냥 컨설턴트로 살았겠지요. 기업가들에게 많이 배웠어요. 이화경 부회장한테는 철학을, 이재현 회장한테는 패러다임, 포맷팅하는 법을, 이미경 부회장에게는 업의 본질을 존중하는 법을 배웠어요. 양회장은 예민하고 촉이 빨라요. 그릇이 아주 큰 리더예요.”

나이가 들수록 눈은 어두워지고 혀는 둔하고 무던해 지는 법인데, 노희영의 눈과 혀는 더욱 젊어지고 있다./ 이진한 기자
-오너들의 삶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다른 세상이에요. 가족의 핏줄로 얽혀 있지만, 더 큰 무언가가 있어요. 단순히 아버지와 딸, 누나와 동생… 그렇게 볼 수가 없더라구요.”

-최종적으로 뭘 하고 싶은 건가요?

“도시에 컨텐츠를 심는 부동산 디벨로퍼도 괜찮을 거 같아요.

-결국은 다 라이프스타일이네요.

저는 기업에 저같은 사람이 많아야 된다고 봐요. 이제는 영화를 알고 음식을 알아야 자동차를 파는 시대에요. 보고 느끼고 오감이 발달한 사람이 기업에 많아야 돼요.

노희영을 처음 만난 건 1996년. 그녀가 국내 최초 단추디자이너라는 직함을 달고 패션계에서 일할 때였다. 단추 디자이너라는 직업도 특이하지만, 더 이색적인 건 미국에서 소아과 인턴십을 하던 사람이 돌연 그 안정된 길에서 파슨스 디자인스쿨로 궤도 이탈을 했고, 그 뒤 패션 일을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다시 레스토랑 컨설턴트로의 운명같은 전업.

노희영이 내놓은 레스토랑을 거치다 보면 그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 지 느낄 수 있다.

이제까지 노희영은 느림의 미학, 슬로우푸드, 로컬 푸드 등 국내에선 생소했지만 가치 있는 키워드를 그녀의 방식대로 해석해 국내 트렌드에 맞게 새로운 것으로 탄생시켰다.

나이가 들수록 눈은 어두워지고 혀는 둔하고 무던해 지는 법인데, 노희영의 눈과 혀는 더욱 젊어지고 있다.


헬스조선 상례서비스

오늘의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