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모르는 내 아이] [5] "몇 개 틀렸어?" 入試 앞두고 과잉 관심… 무관심만 못한 毒親 아빠

최재훈 기자
입력 2014.11.26 05:18

[아빠들의 뒤늦은 '바지 바람']

바깥일에 묻혀 살던 아빠들 뒤늦게 자녀 교육에 개입

심지어 회사에 휴직계 내고 등·하교부터 과외까지 챙겨
애가 실수하거나 성에 안 차면 가정폭력으로 비화하기도

권위적 통제적 경향 심하면 극성 엄마보다 무서운 결과

지난 17일 오후 2시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에서 열린 대학 입시 설명회에는 800여명이 몰렸다. 좌석은 물론 복도와 통로까지 빼곡히 들어찬 학부모들 사이에서 아빠들 모습이 심심치 않게 눈에 띄었다.

안경을 치올리며 입시 자료를 살피는 아빠, 노트북으로 열심히 받아 치는 아빠, 함께 온 자녀에게 귓속말하는 아빠, 스마트폰으로 강의 내용을 녹화하는 아빠 등 이날 참여한 아빠는 200명이 넘었다.

대구에서 온 수험생 아빠 이모(50)씨는 "이번 수능시험이 너무 쉽게 나오는 바람에 입시 전략이 중요하다고 해서 직접 왔다"며 "입시 전략 수립은 아빠인 내 몫"이라고 말했다. 아내와 함께 온 정모(46·부산 동래구)씨는 "무관심하다는 소리를 듣기 싫어 따라왔는데 정말 교육열 높은 아버지가 많아 놀랐다"고 말했다.

자녀 교육 문제에서 뒷짐을 지고 있던 한국 아버지들의 '바지 바람'이 거세다. 친구 같은 아빠 '프렌디(Friendy)'와 육아에 적극 참여하는 북유럽 아빠들을 이르는 '스칸디대디(Scandi daddy)'가 유행한 것은 이미 몇 해 전이다.

그러나 아빠들의 자녀에 대한 관심이 대학 진학 문제가 가시권에 들어오는 중·고교생이 되어 뒤늦게 나타나는 것은 문제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가족 문제 전문가인 최성애(심리학 박사) HD행복연구소 소장은 "아빠의 관심과 격려는 아이에게 큰 힘이 되지만, 매사를 비난하고 비웃으며 위협하는 등 부정적으로 개입하는 것은 무관심한 것보다 오히려 더 나쁜 영향을 끼친다"며 "아빠가 독친(毒親)이 되면 극성 엄마보다 더 무서운 결과를 초래한다"고 지적했다. 아버지는 규칙과 정의, 의무, 책임 등을 강조하는 특성이 있고, 자녀 교육에 참여할 때 권위적·억압적·통제적 경향을 보여 자녀가 공격적으로 변하거나 사회적 관계를 끊고 은둔해버리는 일이 생긴다는 것이다.

지나친 교육열, 폭력으로 번져

초등학교 4학년 아들을 둔 지방대 교수 김모(46)씨는 작년 가을 아들 학교 교장실에 불려갔다.

교장으로부터 "학생의 머리와 팔 등에 상처가 끊이질 않아 상담해보니 '아버지'가 그랬다는데 사실이냐" "아이가 '아버지가 무섭고 같이 살기 싫다'고 호소하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냐"는 질문을 받았다. 김씨는 교장에게 "내 나름의 교육 방식에 간섭하지 마라"고 버티다가 "가정 폭력으로 신고하겠다"는 말에 고개를 숙였다.

김씨는 아들이 3학년 때 단순한 곱셈 문제에 쩔쩔매는 것을 보고 공부에 간섭하기 시작했다. 학습지를 신청하고 학원에 등록한 다음, 월 단위로 아들의 '학습 계획표'를 짰다. 매일 숙제 검사와 모의시험 결과를 체크했다. 하루 1~2시간은 같이 앉아서 공부했다. 그는 "집중을 안 해서 실수하거나, 노력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 손이 올라갔다"고 했다.

대기업 간부인 이모(51)씨는 지난 2012년 '건강 문제'로 회사에 돌연 휴직계를 냈다. 사실은 외동딸(20)이 고3이 되면서 '입시 전담 매니저'가 되기로 결심한 것이다.

이씨는 딸의 등·하교는 물론 학원과 과외 수업까지 데리고 다니는 '로드매니저' 역할부터 시작했다. 수험생 딸의 건강을 챙기는 '영양사'로, 공부에 지친 딸의 말벗이 돼 주는 '상담사'로 1년을 꼬박 딸을 위해 투자했다. 돈벌이는 의사인 아내가 맡았다. 그해 말 이씨의 딸은 대학에 떨어져 재수를 결심했고, 이씨는 휴직 기간을 1년 연장했다.

유학 간 아들 모닝콜 해주는 아빠

무역회사 사장인 신모(58)씨는 올 초 중학교 2학년인 외동아들이 '독립선언'을 하는 바람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아들이 갑자기 "스스로 공부하고 싶다"며 유학을 보내달라고 한 것이다.

어릴 때 부모를 여의고 친척집을 전전하며 성장한 신씨는 마흔이 넘어 결혼했고, 뒤늦게 아들을 얻었다. 아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부터 최근까지 매일 손잡고 등교를 시켜줬다. 아들 또래 사이에 유행하는 옷과 노래 등 모르는 게 없을 정도로 아들에게 관심이 많은 아빠였다. 시험 때면 교시 끝날 때마다 전화나 문자로 "몇 개 틀렸어?"라고 챙기고, 취미 활동 등도 자신이 정해줬다.

아들은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학교 가기가 창피하니까 아빠 제발 따라오지 마세요" 했지만 신씨는 장난처럼 받아넘겼다고 한다. 신씨는 아들이 "아빠에겐 미안하지만, 아빠의 사랑이 숨 막혔다"는 고백을 듣고서 '엉엉' 울었다. 결국 신씨의 아내가 심리상담소를 찾아 가족 문제를 하소연했고, 전문가들의 권유로 신씨는 아들의 유학을 허락했다. 신씨는 요즘도 매일 아침 영국에 있는 아들에게 모닝콜을 하고, 하루 5~6번 통화하고 있다.

군림하는 아빠, 옥죄이는 가족

지난해 가족과 대화를 나누던 중학생 A(당시 15세)군이 가족이 보는 앞에서 아파트 베란다에서 뛰어내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날은 지방에서 교사로 근무 중인 아버지가 집에 오는 주말이었고, 아버지가 '가족의 행복'이라는 주제로 가족회의를 소집했다. "우리 가족은 행복한가"라는 질문으로 이야기를 시작한 아버지는 마지막에 아들 A군의 성적이 떨어진 것을 문제 삼았다.

아버지가 "너만 공부 잘하면 우리 가족 모두가 행복할 텐데…" 하자, A군은 "그럼 나만 없으면 행복하시겠네요" 하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투신했다. 평소 아버지는 집에만 오면 A군과 A군 누나의 학습 상태를 점검했고, 문제가 발견되면 어머니에게 불만을 쏟아냈다고 한다. A군이 다니던 학교 관계자는 "A군이 한때 장래 희망을 적는 난에 '노숙자'라고 써 상담했더니 '우리 집에는 자유가 없거든요'라고 말한 게 기억난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A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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