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화제] 드라마 `파랑새는 있다'의 인간군상

입력 1997.09.24 13:35
## `밑바닥 인생'은 모조리 등장… "모두가 주인공" ##.

차력사, 스턴트 맨, 밤 무대 가수와 사회자, 무희, 사기꾼, 창녀 출
신 카페 종업원…. KBS2 TV 주말 드라마 '파랑새는 있다'는 드라마 주인
공같지 않은 직업들만 모아놓았다. 기업체 사장, 배우, CF 감독, 판검사
도 나오는 게 대부분의 드라마인데 '파랑새는 있다'엔 그런 사람들이 보
이질 않는다. 또 모두가 너무 서민적이고, 골고루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굳이 주인공을 찾으라면 밤 무대 차력사로 일하며 스턴트 맨으로
도 뛰는 병달이(이상인)겠지만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주인공 비중이 아
니다. '좋아하는 사람들(서민)만 모아 모든 걸 골고루 나눠먹는 공동체'
같은 인상을 주는 드라마다.

● 10년 전부터 구상해온 작가 김윤경씨.

'파랑새는 있다'의 생소한 직업군은 작가 김운경(43)씨의 다양한 경
험에서 나왔다. 서울예전 문예창작과를 나왔지만 젊은 시절 말썽꾼, 문
제아, 껄렁패 같은 생활을 해온 그는 삶을 바라보는 '눈높이'가 보통 사
람보다 아래쪽에 있다. 만나는 사람들도 전과자, 옷 장수, 식당 주인 같
은 사람이고 룸살롱보다는 포장마차를 좋아하는 그에게는 이런 세상이
더 잘 보였음 직하다.

차력사는 김운경씨가 10년 전부터 미니 시리즈 주인공으로 구상해 취
재해왔다. 어릴 때부터 시골 장터 약장수에 매료돼 뱀 장수 사설 정도는
줄줄 외는 실력을 가진 그다. 꼭 한번 드라마화 하고 싶었다고 한다. 자
신이 쓴 드라마 '옥이 이모'가 끝난 지난해 말 3개월 동안 인도를 배낭
여행하며 '공중부양' 이야기를 많이 접한 것도 한 계기가 됐다. '파랑새
는 있다'는 그렇게 해서 나왔다. 병달이의 탄생 배경이다. 지리산에서
기공을 연마하다 입신 양명을 꿈꾸며 하산한 병달. 공중부양을 배워 미
국라스베이거스로 진출해 세계적 영화배우가 되겠다는 조금은 허황된 꿈
을 갖고, 밤 무대 차력팀을 따라다니며 다양한 삶과 여러 여자를 거치는
인물이다.

여기까지 정하고 김운경씨와 KBS가 함께 찾은 연기자가 이상인이다.

지난해 3월 KBS 공채 탤런트 18기로 입사해 1년 동안 여기저기 단역으로
만 얼굴을 비치던 연기자다. 하지만 뛰어난 쿵후, 합기도, 태권도 실력,
경남 밀양에서 평생을 기 수련에 바쳐온 아버지를 따라 어릴 때부터 기
를 연마한 사실 등을 알게 된 KBS측이 "한번 써먹어야겠다"며 점 찍어놓
은 연기자였다. 배역을 맡자 그는 한달여 동안 국내 차력계 일인자 오재
성씨로부터 차력을 집중적으로 배웠다. 방송 시작할 때쯤엔 북한산에 올
라 맨 손으로 큰 돌을 세 조각 내 제작진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워낙 안 알려진 주인공이라 드라마 촬영 초기 그에겐 일화가 많았다.

카메라 맨으로부터 "야, 스탠바이 다 됐는데 연기자는 어디 갔어"라는
소리도들었다. 남원에 야외 촬영 갔을 땐 화장실에서 주민이 "무슨 공사
하러 왔어요"라며 그를 인부로 보기도 했다. 단순한 촌놈 같지만 그는
뜻밖에 공부에도 꽤나 취미가 있다. 고려대 경영학과 재학중으로 토익
8백50점은 쉽게 넘긴다고 한다. 이상인의 차력 선생 오재성씨는 '파랑새
는 있다'에서 항상 지각하며 구박받는 엑스트라로 나오고 있다. 사람이
마음에 들면 어떤 식으로든 드라마에 출연시키는 작가의 취미 덕이다.

병달이의 단짝 절봉이로 나오는 박남현은 이상인의 차력과 스턴트 스
승이기도 하다. 무술 실력이 워낙 뛰어난데다 운동 신경이 좋아 한때 진
짜 스턴트 맨 생활을 한 인물이다. 스턴트를 하다 심하게 다쳐 다시 스
턴트를 못하게 되자 김운경씨가 드라마에 조금씩 써준 게 탤런트 데뷔
계기가 됐다. 요즘 그는 깡패들로부터 전화, 편지 연락을 많이 받는다.

"어떻게 하면 탤런트가 될 수 있느냐"는 질문들이다. 깡패들이 보기에
외모나 배경, 무술 실력이 자신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끼기 때문일 것
이다. 청풍거사 송경철은 그 나이(45세)에 그 정도 탄탄한 몸과 운동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 없어 '옥이 이모'에 이어 김운경씨 작품에 또다
시 기용됐다.

사기꾼 백 관장(백윤식)도 작가가 애착을 갖고 있는 인물이다. 교도
소 갔다온 사람들과 자주 접하는 작가가 그들 세계를 좀 이해하기 때문
에 만든 인물이다.

'파랑새는 있다'의 이야기 절반은 샹그릴라 나이트 클럽이라는 무대
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변두리 나이트 클럽에 기생해 살아가는 바닥 인
생이야기도 하고, 우리 사회도 풍자하기 위해 작가가 설정한 장치다. 작
가는 이를 위해 올해 초 서울과 위성 도시 나이트 클럽을 죽 돌며 취재
했다. 극중 나이트 클럽 사회자 앤디 김(한진희)이 포장마차에서 소주를
마시며 잠깐씩 찾아오는 밤 무대 가수, 웨이터 등과 이야기하는 장면은
작가 김운경씨가 나이트 클럽 취재 때의 모습 그대로다. 그는 나이트 클
럽옆 포장마차에서 나이트 클럽 사회자와 소주 한잔 하며 그 세계를 취
재했다고 한다. 또 사회자를 찾아온 병아리 밤 무대 가수도 만나고, 무
희와 웨이터들의 고충도 들었다. '파랑새는 있다'의 나이트 클럽 묘사가
시청자에게 좀더 정감 있게 다가오는 건 이 때문이다.

● 진짜 밤무대 가수 출연.

이 나이트 클럽은 병달이와 절봉이, 청풍거사가 차력 시범으로 밥벌어
먹고 사는 장소이기도 하지만 무명 가수와 무희들의 생업 터전이기도 하
다. '파랑새는 있다'에선 극중 무명 가수와 무희들의 이야기도 자세하고
비중 있게 다뤄준다. 그 배역으로는 오랫동안 빛을 보지 못한 연기자들
을 등장시켜 얼굴을 알리게도 해준다. 진짜 밤 무대 가수들을 기용해 밥
벌이가 더 쉽게 만들어주기도 한다. 작가의 '낮은 곳'에 대한 연민이 겹
으로 표현되는 장소다.

극중 패티 정(양금석) 자리를 꿰차고 등장한 오은주, 간혹 출연하는
이가수(예명)는 진짜 밤 무대 가수다. 오은주는 '돌팔매'란 노래도 취입
한 중견이다. 작가 김운경씨와 전산 PD가 밤 무대 취재를 위해 천호동
'현대 카바레'에 갔다가 전격 캐스팅한 사람이다. 밤 무대 세계에 대해
가장 자세하고 친절하게 설명해준 데 대한 보답이라고 한다. 이가수도
20년간 밤 무대에서 잔뼈가 굵은 가수다. '이유'와 '혼자는 못 살아요'
란 자기 노래도 있다.

KBS 모 기술 감독이 PD에 추천해 캐스팅됐다. 초반에 자주 나왔던 밤
무대 가수 김중배는 전산 PD가 쇼 PD들에게 "중년 여자에게 가장 섹스
어필한 남자 밤 무대 가수가 누구냐"고 물어물어 추천받은 사람이다. 이
드라마의 밤 무대 장면이 아주 사실적인 건 이같은 '진짜'들이 출연하기
때문이다.

한때 "저 연기자 진짜 가수 같다"는 시청자들의 탄성이 연발한 것도
그 때문이다. 이들은 요즘 TV 위력을 실감하고 있다. 밤 무대에서 "'파
랑새는 있다에 출연중인 누구'라고 소개하면 손님들이 아는 척을 한다"
고 즐거워한다. 이제 전산 PD와 작가 김운경씨에겐 밤 무대 가수들의 로
비도 적잖이 들어온다.

극중 이들 밤 무대 가수들이 노래할 때 춤추며 흥을 돋우는 두 무희
는 KBS 14기 탤런트 김성희, 18기 김여랑이다. 이들은 요즘 TV 토크 쇼
에 나올 정도로 인기를 얻고 있다. 백윤식과 동거하는 연변 처녀 홍단옥
역의 김은수도 연변 말씨를 잘 흉내내는 걸 보고 작가가 기용했다. 이
드라마에선 주연을 찾기 힘든 것처럼 단역도 없다.

<박중현 문화2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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