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력 줄이는 마당에…” 자영업·中企 ‘떡값’ 문화 사라져

박용선 기자
입력 2019.09.11 11:18
서울 종로구에서 10년 동안 한식집을 운영한 김모(54) 사장은 추석을 앞두고 고민에 빠졌다. 직원들에게 명절 상여금 이른바 ‘떡값’을 줘야 하는데 장사가 안돼 지난해 추석 때처럼 줄 수가 없어서다.

김 사장은 지난해까지 주방에서 오랫동안 일한 직원에게는 떡값으로 50만원을, 그리고 일한 기간을 고려해 직원별로 각각 30만원, 20만원을 챙겨줬다. 하지만 올해는 떡값을 절반가량 줄였다. 몇 달 일하지 않은 직원에게는 떡값을 못 주고 3만원 상당의 종합선물세트를 지급했다.

김 사장은 "경기침체와 근로시간 단축 영향으로 저녁에 가게를 찾는 직장인들이 별로 없다"며 한숨을 쉬었다. 김 사장의 가게는 최근 한 달 매출이 지난해와 비교해 40%가량 줄었다. 직원도 3명 줄여 현재 5명이 일하고 있다. 김 사장은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내년에는 떡값을 못 줄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종로 일대 음식점 68% "손님 줄어 추석 ‘떡값’ 못 줘"

서울 종로구 종로3가 사거리 부근 한 대로 양쪽에 식당들이 들어서 있다. 지난 9일 서울 종로구 종로 2·3·4가 일대 음식점 30곳을 조사한 결과, 취재에 응한 22곳 중 15곳(68.2%)의 음식점이 올해 직원에게 추석 떡값 또는 선물을 지급할 계획이 없다고 답했다. /박용선 기자
추석 전 직원들에게 명절 상여금 또는 추석 선물을 주는 외식업 소상공인·자영업자가 줄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가 올해 초 전국 소상공인·자영업자 9500여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를 보면 2017년 말 기준 전국 소상공인·자영업자들은 1년에 총 2억379억원을 벌었고 비용으로 1억7154만원을 썼다. 1년 이익이 3225만원에 불과한 셈이다. 전문가들은 올해 이익은 더 줄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익이 줄자 비용 관리 차원에서 명절 떡값 문화도 사라지고 있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는 "경기 침체와 근로시간 단축 등으로 저녁 시간 식당을 찾는 손님은 줄고 있는 반면,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여파로 인건비 등은 늘고 있다"며 "소상공인들이 2017년, 2018년과 비교해 이익을 더 낼 수 있는 요건을 찾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수축 사회, 양극화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유통 대기업도 힘들어하고 있는데, 외식업 자영업자들의 어려움은 더 클 것"이라며 "명절 떡값을 쉽게 볼 수 있지만, 고용주와 직원과의 신뢰 구축, 직원 사기 부분에서 상당히 큰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조선비즈가 지난 10일 서울 종로구 종로 2·3·4가 일대 음식점 30곳을 조사한 결과, 취재에 응한 22곳 중 15곳(68.2%)이 "직원들에게 추석 상여금 또는 선물을 지급할 계획이 없다"고 답했다.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손님이 줄고 있는 상황에서 떡값을 줄 여유가 없다"고 했다.

한 고깃집 사장은 "지난해보다 손님이 약 30% 줄었다"며 "지난해에는 직원들에게 추석 상여금 20만원을 줬는데 올해는 식당에서 판매하고 있는 고기 선물 세트(약 5만원)를 챙겨줬다"고 말했다. 그는 "내가 예전에 식당 직원으로 일할 때 명절에 작은 선물이라도 챙겨주면 고향에 내려갈 때 힘이 났다"며 "그 기억을 잊지 못해 직원들에게 추석 선물을 챙겨주고 있지만 이익이 점점 줄어 앞으로 어떻게 하면 될지 모르겠다"고 했다.

주변 호프집 박모 사장은 "10년이 넘게 종로에서 장사를 했지만 이렇게 손님이 없었던 적은 처음이다"며 "과거에는 잠깐 줄었다 다시 늘어나는 것을 반복했는데 올해는 손님이 쭉 없다"며 한숨을 쉬었다. 그는 "추석 음식을 준비하는데 돈을 쓰기 때문에 사람들이 추석 전에 외식을 잘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지만 올해는 너무 심하다"며 "매출이 절반 이상 줄었고 직원을 줄여야 하는 상황에서 떡값을 주는 것은 생각도 못 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 사장은 올해 직원을 1명 줄여 현재 2명의 직원을 두고 있다.

소상공인연합회가 올해 4~5월 전국 소상공인·자영업자 70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인력 실태 조사를 보면 소상공인 58.9%가 지난해 7월 이후 직원 수를 줄였다고 답했다. 직원 1명을 줄인 소상공인이 30.8%로 가장 많았고, 2명을 줄인 소상공인은 21.2%, 3명 이상 줄인 소상공인은 6.9%였다. 직원을 늘렸다고 답한 소상공인은 5.9%에 불과했다.

◇인건비 상승에 판매 부진…中企도 떡값 문화 사라져

서울 중구 세운청계상가 주변 철재골목에 있는 금속 가공·절단업체./박용선 기자
중소기업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명절 떡값 문화가 점차 사라지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가 830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지난달 추석 자금 수요를 조사한 결과 "직원에게 올해 추석 상여금을 지급할 계획이 있다"고 답한 업체는 55.4%에 불과했다. 4년 전인 2015년 65.5%에 비해 10.1%포인트 감소했다. 중소기업들은 인건비 상승, 판매 부진, 판매 대금 회수 지연 등으로 원활한 현금 창출이 어렵고, 이로 인해 직원에게 추석 떡값을 주는 데 부담을 느꼈다.

인천 남동공단에서 의약품 뚜껑 등을 제조하는 한 중소기업 사장은 "물량은 줄고 인건비와 재료비가 오르고 있는 상황에서 비용 관리를 해야 하기 때문에 2017년부터 직원들에게 추석 떡값을 못 주고 있다"고 했다.

이재원 중소기업중앙회 경제정책본부장은 "안으로는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 밖으로는 미중 무역과 한일 관계 악화 등으로 국내 중소기업 경영 환경이 악화되고 있다"며 "자금 사정이 좋아야 추석 떡값 등 직원 복지를 생각할 수 있는데 현재 이런 여유가 있는 중소기업은 별로 없다"고 말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소상공인·자영업자와 중소기업들이 최저임금 등 이미 법적으로 강제된 임금이 많이 오른 상황에서 노동 비용을 줄이기 위해 강제되지 않은 명절 떡값 등을 줄이고 있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현상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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