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만 팔다가는 추락… 유통업계, 땅 굴려서 돈 불린다

이성훈 기자
입력 2019.08.14 03:10

[Close-up] 매장 팔고 빌리고 빌려주고… 요즘 마트·편의점 생존법

매장 매각, 창고·물품보관함 임대, 공유 차량 픽업 서비스…. 이커머스(전자상거래) 업체의 공습에 벼랑 끝에 내몰린 오프라인 유통업체들이 생존을 위해 고육책을 짜내고 있다. '국민 가격'(이마트), '극한 가격'(롯데마트) 같은 초저가 상품으로 이커머스 업체와 가격 전면전을 벌이던 유통업체들이 이젠 최대 자산인 유통 매장을 100% 활용해 수익을 내는 사업에도 뛰어들고 있다. 이커머스 업체가 가지지 못한 오프라인 매장의 장점을 십분 활용해 체력을 키우겠다는 것이다.

국내 유통업체들은 목 좋은 곳의 부동산을 매입해 점포를 운영해 왔다. 고객이 몰리고, 부동산 가격 상승에 따라 기업 규모도 덩달아 커졌다. 국내 유통업체를 향해 "유통이 아닌 부동산업을 한다"는 지적이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부동산 값 상승세가 꺾이고, 영업이익이 적자로 돌아서면서 수익성 낮은 매장은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이런 매장을 매각하거나 유휴 공간을 적극 활용하면서 '오프라인 공간'의 수익성을 극대화하며 반전을 꾀하고 있다.

매장 팔아서 자금 조달

지난 2분기 창사 26년 만에 분기 적자를 처음 기록한 이마트가 전국 매장 158곳(트레이더스 포함) 중 10곳 안팎을 외부 투자자에게 매각한 후 재임차하기로 했다고 13일 밝혔다. 이를 통해 약 1조원을 조달해 부채를 낮추고 이자 비용 등을 줄일 계획이다. 또 지난 1년 새 반 토막 난 주가를 떠받치기 위해 자사주 90만주(현 시세 약 950억원)를 오는 11월 13일까지 장내 매수하기로 했다. 자사주 매입과 대규모 매장 매각 추진은 모두 처음 있는 일이다. 이마트 관계자는 "매장을 가장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방안으로 '매각 후 재임차'를 선택했다"고 말했다.

지난 2분기 창사 후 첫 분기 적자를 기록한 이마트는 자금 조달을 위해 10개 안팎의 매장을 외부 투자자에게 매각한 후 재임차하기로 했다. /이마트
오프라인 유통업체들은 자산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매장 매각에 나서고 있다. "부동산을 깔고 앉아 있어 봐야, 보유세 같은 세금만 더 내고 수익에는 별 도움이 안 된다"며 "매각을 통해 목돈을 만들어 부채를 갚고 신사업에 투자하는 것이 낫다"는 것이다. 국내 유통업체들의 자체 소유 매장 비율은 외국에 비해 높다. 외국 유통업체들은 일반적으로 50%이지만, 이마트는 약 85%, 홈플러스·롯데마트는 약 60%나 된다.

롯데쇼핑이 투자금 확보를 위해 부동산 펀드(리츠)로 만들기로 결정한 롯데백화점 구리점. /롯데백화점
롯데쇼핑은 지난달 롯데백화점 강남점과 구리점, 롯데아울렛 대구율하점, 롯데마트 청주점 등 총 10개 점포를 리츠(부동산 투자 펀드)에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앞으로 이 리츠를 증시에 상장해 약 1조5000억원을 조달할 계획이다. 홈플러스도 총 140개 매장 중 51개 매장을 리츠회사에 매각하고 지난 3월 상장을 추진했다. 그러나 투자자 모집에 실패해 철회했다.

홈플러스가 지난 7월 말 일산점 무빙워크 바로 앞 유휴 공간에서 시작한 개인 창고 서비스. /홈플러스
이마트는 이번 매각이 성사되면 부채 비율을 낮출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마트의 부채 비율은 2016년 이후 3년간 80%대를 유지했지만 올해 1분기 말 109%까지 올라갔다. 이마트 관계자는 "예정대로 1조원을 유치하면 부채 비율이 5%포인트 정도 떨어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서용구 숙명여대 교수는 "매장이 오프라인 유통업체에는 최고 자산이자 무기"라며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움직임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라고 말했다.

수익 극대화 위해 자투리 공간도 활용

유통업체들은 수익을 극대화하고 고객을 끌어모으기 위해 매장 안팎 자투리 공간도 적극 사용하고 있다. 홈플러스는 지난 7월 말 일산점에서 개인 창고 서비스인 '더 스토리지'를 시작했다. 무빙워크 인근 약 160㎡(약 48평) 공간에 개인 물품 보관함 총 53개를 만들었다. 평소 고객들이 주차장으로 가는 길목으로 지금까지 비어 있던 곳이다. 홈플러스는 크기에 따라 1년에 4만4000~12만원을 받고 보관함을 빌려준다. 고객 반응이 좋아 이 서비스를 다른 점포로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홈플러스 관계자는 "매장 활용도를 극대화하는 방안으로 보관 서비스를 선택했다"고 말했다.

편의점 CU는 40여개 매장의 주차 공간을 차량 공유 서비스 업체인 쏘카에 대여해주고 있다. /BGF리테일

영업이익률 하락에 시달리는 편의점도 공간 활용에 적극적이다. 현재 국내 편의점 업체의 평균 영업이익률은 1~2%에 불과하다. BGF리테일이 운영하는 CU는 40여 매장에서 차량 공유 서비스 업체인 쏘카에 픽업 공간을 대여해 주고 있다. BGF리테일은 매장 앞에 주차 공간이 확보되는 매장을 중심으로 '차량 공유 픽업' 서비스를 확대할 계획이다. 이 회사 관계자는 "수익이 많이 나는 것은 아니지만, 모객 효과까지 감안하면 효과적 매장 활용법"이라고 말했다. 세븐일레븐은 작년 말부터 서울 도심과 주요 관광지를 중심으로 무인 물품 보관 서비스를 시작했다.


조선일보 B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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