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한·일 경제전쟁 정권교체에도 흔들림없는 컨트롤타워로 장기전 대비해야"

장우정 기자
입력 2019.08.14 06:00
‘부품⋅소재 국산화’ 40년 산증인, 이덕근 한국기술거래사회 수석부회장
"정부, 돈 대고 사람·정보도 제공해야, 글로벌 기업 키울 수 있어"
대일 소재 의존 해소 매달리지 말고 新산업용 첨단 부품·소재 연구 필요한 때

2006년 초 일본 정부는 반도체 회사 히타치제작소·도시바·르네사스테크놀로지와 손잡고 ‘히노마루(日の丸·일장기) 반도체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1980년대만 해도 세계 시장 절반가량을 점유하던 반도체 최강국 일본이 90년대 들어서는 미국에 역전당하고, 한국·대만에도 추격을 받는 처지로 전락하자 힘을 합쳐서라도 열세를 뒤집어보자는 절박함이었다. 부제는 ‘타도 인텔, 타도 삼성’. 프로젝트는 분야별로 우위를 점하고 있는 각 업체가 정부, 대학연구소와 협업해 공격적으로 개발 체제를 구축하면 ‘메이드 인 재팬, 넘버 1’의 영광을 순식간에 되찾을 수 있을 것이란 구상이었다.

7월 초 일본이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 소재 3종을 콕 집어 수출 규제 목록에 올렸다.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수출절차 간소화 국가)에서 배제하는 추가조치도 단행했다. 모든 기획·설계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최측근이자 ‘싱크탱크’로 유명한 아마리 아키라(甘利明)가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마리는 2006~2008년 경제산업성 장관을 역임하면서 소재를 통한 산업 육성을 주장해 온 ‘소재 전문가’다.

서울 강남구 역삼동 한국기술거래사회 사무실에서 만난 이덕근 수석부회장은 “한·일 경제전쟁이 일단락되고 있다는 것은 어림없는 소리”라면서 “우리 정부도 장기전으로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박상훈 기자
13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서 만난 이덕근 한국기술거래사회 수석부회장은 이런 배경에서 한·일 경제전쟁을 장기전으로 보고 컨트롤타워 중심으로 소재·부품 육성 전략을 짜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이 최근 1개 품목에 대해 수출허가를 해주고 추가로 개별 허가 품목을 지정하지 않으면서 한·일 경제전쟁이 일단락되고 있다는 얘기가 나오는데 어림없는 소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일본의 수출 규제는 강제 징용 판결이 단초가 된 것처럼 보이지만, 치밀한 전략가·소재 전문가가 오래 전부터 준비해 온 것"이라며 "우리 정부도 긴 호흡으로 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은 "정부가 돈만 투입한다고 해서 중소기업의 소재·부품 기술개발이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면서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정부가 신뢰성 인증, 정보·통계 제공, 민간 자금 투입 등을 종합적으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생산기술연구원의 전신인 한국정밀기기센터에서 1976년부터 근무해 온 이 부회장은 40년 넘게 소재·부품 국산화의 최전선에 있던 산증인이다. 2001년 ‘중소기업의 소재·부품산업 육성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기 위해 산업부 산하에 만들어졌던 부품소재통합연구단으로 파견 가 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이 부회장은 2016년 현장 경험을 담아 ‘왜 다시 소재 부품인가’라는 책을 내기도 했다. 당시에는 크게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최근에서야 절판된 책을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40년 넘게 소재·부품 대국론을 말씀하셨지만, 지금까지 국산화가 지지부진하다.

"컨트롤타워가 없기 때문이다. 2001년 2월 ‘부품소재특별조치법’이 제정됐다. 한·일간 교역이 확대될수록 대일무역적자 규모가 커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으로부터 일방적으로 부품소재를 수입한 탓이었다. 이 법 덕에 여러 부처로 나뉘어 관리되던 소재부품산업에 관한 일목요연한 정책집행이 가능해졌다. 당시 한국생산기술연구원에서 근무했는데, 이종구 원장이 불러 가 보니 산업부 산하에 설립하는 부품소재통합연구단에 당신이 적임자라고 하더라. 앉아서 일할 책상, 직원 1명 없는 맨땅에서 기존 21개 공공연구기관을 통합하는 일을 했다. 밤 10시가 넘으면 추리닝으로 갈아입고 일했고, 새벽 두세시까지 일했다. 당시 산업부 담당 공무원들도 함께 밤샘 근무를 하며 통합연구단 설립을 도왔다.

그렇게 일군 부품소재통합연구단은 한국부품소재산업진흥원으로 확대 개편됐다가 2009년 정부 조직 개편에 따라 R&D 기능은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KEIT)으로, 그외 산업진흥 기능은 한국산업기술진흥원(KAIT)으로 나뉘면서 해체됐다.

중소기업의 기술 개발은 R&D 자금 얼마 준다고 해서 성공하지 않는다. R&D가 중심이 되면서 이 기술을 가지고 새로운 비즈니스를 창출하고 나아가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복합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정부자금에 민간 벤처캐피탈 자금을 매칭펀드 방식으로 지원해 기업이 R&D 외에 운영·시설 자금으로 쓸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또 이 기술을 국내·외 대기업들이 믿고 쓸 수 있도록 신뢰성 인증도 해주고 정보·통계도 제공해야 한다. 각 전문 인력이 머리를 맞대도 모자랄 판에 모래알처럼 흩어져버렸으니 대통령 특명이 있기 전까지는 통합이 어려울 것이다. 통합이 되더라도 정권이 바뀌면 또 해체될 것이다."

-예산을 줘도 중소기업에 자체적으로 R&D 할 인력이 없다고 하는데.

"정부가 공공 연구기관에 있는 연구원들을 기업 현장에 파견해 R&D가 끝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기업은 스톡옵션을 주고 파견 연구원에게 ‘연구소장’ ‘개발부장’ 직책을 줘야 한다. 정부가 추가로 인센티브를 준다면 연구원들에게 더 강한 유인이 될 것이다."

이덕근 부회장은 컨트롤타워를 통해 기술개발을 위한 자금 지원뿐 아니라 종합적인 지원이 이뤄져야 국산화가 성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박상훈 기자
-중장기적으로는 소재·부품 국산화를 해야 한다는 데 이견이 없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1년 만에, 3년 만에 가능한 것인가.

"2008년에 일본에서 가장 많이 수입되는 100개 품목을 분석해 보니 상위 15% 정도는 지금부터 죽자사자 해도 안 되는 분야였다. 이번에 수출규제 항목에 포함된 플루오린 폴리이미드의 원천기술인 폴리이미드는 미국 듀폰이 개발부터 상용화까지 20년의 시간을 들여 내놓은 것이다. 전선 피복으로 처음 쓰였던 폴리이미드는 여러 소재로 응용돼 현재 자동차·디스플레이·바이오 등 다양한 분야에 들어가 어마어마한 부가가치를 내고 있다. 1~2년 만에 될 일이 아니다. 하위 20%는 글로벌 분업구조상 사다 쓰는 것이 훨씬 경제성이 컸다.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65% 중에서 지금 당장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전략적으로 우선순위를 정해 투자해야 한다."

-정리해보면 컨트롤타워를 두고 우선순위를 정해 국산화에 투자하면 되는 것인가?

"지금 정부 지원책을 보면 일본 수출규제에 대응해 내수용, 즉 국내 대기업을 위해 중소기업의 소재·부품을 국산화하려는 것 같다. 그동안의 논의가 ‘자동차, 반도체, 디스플레이 같은 국가 주력사업 관련 소재부품 해외 의존도가 컸으니 국산화를 해보자’ 였다면, 이제는 변화하는 4차 산업혁명의 메가 트렌드를 읽고 정책을 다시 짜야 한다.

HP가 잉크젯 프린터를 5만원에도 파는 것은 소모품인 잉크를 팔기 위해서다. 3D(3차원) 프린터를 생각해보라. 3D 프린터를 팔면 여기에 들어가는 소재를 계속 팔 수 있다. 소재는 잉크 같은 일반 소재가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첨단 소재다. 새로운 신산업에서 어떤 소재, 부품이 중요한지 지금 연구하지 않으면 또 남의 것을 사다 써야 한다. 단순히 대일 소재부품 종속국 수준이 아니라 대세계 무역적자국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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