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외정책硏 "美 당분간 중립 유지…日 규제 단기 영향 제한적"

세종=이승주 기자
입력 2019.07.12 14:00
"日 수출규제가 미국 산업계에 피해주면 중재 가능성"
"산업경쟁력·리더십 역전에 대한 불안감 반영" 시각도

김현종 국가안보실 2차장이 한·일 무역갈등 해결을 위해 미국을 방문 중인 가운데, 미국이 당분간 중립적 자세를 유지할 것이라는 국책연구기관의 주장이 나왔다. 일본의 반도체·디스플레이 수출 규제가 단기적으로는 우리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은 12일 오전 세종국책연구단지 본원에서 '일본의 수출제한조치 분석과 전망'을 주제로 현안토론회를 열고 이같은 내용을 발표했다.

이재영 대외경제정책연구원장이 12일 오전 세종국책연구단지 본원에서 열린 ‘일본의 수출제한조치 분석과 전망’ 현안 토론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제공
이날 발표자로 나선 강구상 부연구위원은 "미국은 한국과 일본간 갈등상황에 대해 간접적으로 우려를 표하고 있지만, 계속해서 중립적 자세를 취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일 갈등상황에 대해 직접적으로 언급한 적도 없고 현재까지 미국 내 산업계로부터 일본의 수출규제 강화로 인한 피해가 보고되지도 않았다"며 "일본이 강제징용 배상판결에 대한 보복으로 수출규제를 강화한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외교적 수단으로 무역제한조치를 활용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했다.

과거 오바마 정부와 달리 트럼프 정부는 한·일 역사갈등에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 점도 미국이 당분간 중립적 자세를 취할 것으로 전망하는 이유로 꼽았다. 강 부연구위원은 "오바마 정부 때는 헤이그 3국 정상회담, 3국 외교장관 회담 등 한·미·일 3국의 견고한 동맹 유지를 위해 많은 노력을 한 데 비해 트럼프 정부는 출범이후 한·일 문제에 소극적인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며 "우리나라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판결 직후 마크 내퍼 미 국무부 동아시아 태평양 한국·일본 담당 부차관보 대행이 구체적인 언급을 자제한 것이 한 사례"라고 했다.

다만, 미국 산업계에 피해가 발생할 경우 트럼프 대통령의 태도가 바뀔 수도 있다고 봤다. 그는 "'아메리카 퍼스트(America First)'의 구호 아래 자국 산업에 피해가 발생할 경우 미 행정부가 개입해 한·일 갈등을 중재할 가능성이 있다"며 "2020년 대선에서 재선을 목표로 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수단으로 활용될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했다.

일본의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 수출 규제가 한국의 반도체·디스플레이 산업에 미치는 영향력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김규판 선진경제실장은 "이번에 규제강화 대상에 포함된 포토레지스트는 극자외선(EUV) 노광이라는 최첨단 공정에 사용되는 것으로 메모리 반도체보다는 비메모리 반도체에 쓰일 것으로 추론되는 등 삼성전자(005930)SK하이닉스(000660)등 우리나라가 절대적 경쟁력을 갖고 있는 메모리 반도체 분야와는 무관하다"고 했다.

일본 기업의 해외 공장으로부터 우회 수입을 할 수 있고, 수입 규제 조치가 내려진 플루오린 폴리이미드가 스마트폰 액정, 유기EL 패널의 직접적인 소재가 아닌 점도 일본의 수출 규제가 국내 산업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지 않을 것으로 판단하는 배경이다.

배찬권 무역통상실장은 "반도체 생산 차질이 한국 경제와 세계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측정하는 작업을 하고 있는데, 일각에서 제기하는 것처럼 큰 폭의 성장 저하 수준까지는 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며 "세계 반도체 산업 경쟁구도가 바뀌려면 반도체 경쟁업체들이 반도체 공급 능력을 확대해야 하는데 여기에는 천문학적인 자금이 소요된다. 지금과 같이 글로벌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서 기업들이 투자를 결정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기 때문에 단기적 영향이 세계 반도체 경쟁 구도의 전환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재영 원장은 이번 일본의 수출 규제는 한·일 신뢰관계를 파기하는 조치이자 세계무역기구(WTO) 체제의 내부 균열을 야기하는 행위로 평가했다. 한·일 산업경쟁력 및 아시아 내 리더십 역전에 대한 일본의 불안감과 초조함이 반영된 결과라고도 했다.

이 원장은 "이미 조선, 반도체,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등의 분야에서 한국과 일본의 격차가 벌어진 가운데 장기적으로 한국과 일본의 산업경쟁력이 역전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며 "아시아 내 리더십을 놓고 보면 이미 중국에 역전을 당한 상황에서 그간 중요한 파트너로 생각했던 한국에도 역전당할 수 있을 것이란 불안감이 있다"고 했다.

그는 "한·일 충돌이 격화되면 글로벌 경제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것이며 일본의 이런 조치가 중국의 경제력과 지도력을 한층 강화하는 의도치 않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며 "모험주의 정책을 지금이라도 그만두고 충돌보다는 협력으로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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