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어디서 본 건데?...패션업계, 도 넘은 디자인 표절

김은영 기자
입력 2019.07.12 06:00
짧은 유행 주기 악용해 패션 상품 디자인 도용 만연
나도 모르게 짝퉁 구매…피해는 소비자 몫

노스페이스의 눕시 재킷(왼쪽)과 A 업체의 시그니처 재킷./각 브랜드
"어, 이거 노스페이스 아닌가?" 직장인 김모(32) 씨는 최근 온라인 쇼핑몰에서 쇼핑을 하다 황당한 경험을 했다. 국내 아웃도어 의류 업체 A사가 신상품으로 출시한 패딩 재킷이 유명 아웃도어 의류 업체의 디자인과 너무 닮았기 때문이다.

이 업체는 최근 ‘시그니처 패딩’이라는 짧은 패딩 재킷을 겨울 한정 상품으로 출시했다. 어깨 부분에 검은색 배색 원단이 들어가고 가슴과 뒷면에 브랜드 로고가 들어간 디자인이다. 이 상품은 노스페이스가 매년 출시하는 ‘눕시 패딩’과 유사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브랜드 로고와 배색 원단이 쓰이지 않은 목부분, 소매 부분에 패치워크 장식이 들어간 정도다.

눕시 패딩은 1992년 노스페이스가 처음 출시한 제품이다. 올록볼록한 외형이 타이어와 닮았다고 해 ‘미쉐린 패딩’, ‘근육맨 패딩’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국내에서는 2000년대 중후반 중·고등학생의 ‘교복 패딩’으로 인기를 끈 후 시들해졌다가, 최근 복고(레트로) 패션의 유행으로 다시 부활했다. 김 씨는 "매년 여러 브랜드가 비슷한 옷을 출시하긴 하지만, 이건 좀 심한 것 같다. 이 옷을 입으면 짝퉁을 입었다고 놀림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A 의류 업체에 입장을 물었지만 답변을 받지 못했다. 노스페이스를 운영하는 영원아웃도어 관계자는 "특정 브랜드의 대표 디자인이 도용될 경우에는 브랜드 간 정체성의 차이가 모호해져 소비자의 구매 결정 과정에 지장을 초래할 수 있다"라며 "디자인 도용 행태는 근절되어야 하고 관련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라고 밝혔다.

듀카이프의 마스크 모자(왼쪽)과 한세엠케이의 마스크 모자./조선DB
패션업계의 디자인 도용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미국 스포츠의류용품 업체 나이키가 운동화 ‘에어포스원 푸에르토리코’를 출시했다가 파나마 원주민 쿠나족의 전통 디자인을 허락 없이 사용했다는 논란에 제품 전량을 회수했다

한세실업의 자회사 한세엠케이는 국내 신진 패션 브랜드 듀카이프의 ‘마스크 모자’ 디자인을 모방했다는 의혹으로 고소를 당했다. 이에 한세엠케이는 모자에 마스크를 거치하는 형태는 독점권을 주장할 수 없으며, 세부사항도 다르기 때문에 표절이 아니라는 입장을 내놨다.

동대문 의류를 사입(仕入)해 파는 온라인 쇼핑몰도 디자인 표절 시비가 빈번하게 일어난다. 곰팡이 호박즙으로 논란을 빚은 임블리는 명품을 모방한 제품을 팔았다가 소비자들의 공분을 샀다. 임블리에서 구찌와 유사한 디자인의 가방을 구매한 이모(34) 씨는 "명품과 비슷한 지 모르고 들고 나갔다가 짝퉁이라는 소리를 듣고 너무 부끄러웠다. 회사에 환불을 요청했더니 한 번 사용한 제품이라 환불해줄 수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면서 "우리 같은 일반인은 카피 상품을 알아보기 어렵다. 옷을 만들어 파는 사람들이 양심적으로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나이키는 ‘에어포스원 푸에르토리코’(왼쪽)를 출시했다가 파나마 원주민의 디자인을 허락 없이 사용했다는 비난에 제품을 전량 회수했다./나이키
패션업계의 디자인 도용 논란이 만연한 이유는 유행 주기가 짧은 패션업계의 특성상 패션 상품의 디자인 지식재산권을 지키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디자인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서는 특허청에 상표등록을 하거나 디자인권을 출원해야 하는데, 등록 기간이 최소 6개월~1년 정도 걸리기 때문에 이 과정이 무의미하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또 디자인이 비슷하더라도 트렌드를 반영한 것인지, 제품을 표절한 것인지 판단을 내리는 게 쉽지 않다. 설사 표절 판정을 받더라도 처벌 수위가 가벼워 일단 베끼고 보자는 분위기다.

이런 문제가 지속되자 서울디자인재단은 패션 산업 디자인권 보호를 위해 ‘패션엔젤’을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디자인권을 보호하기엔 역부족이다.

패션업계 한 관계자는 "프랑스 브랜드 베트멍이 우리나라의 표절 제품을 풍자하기 위해 한국 한정판으로 가짜 컬렉션을 만들어 판 적이 있다. 재밌다고 웃어넘기기 전에 디자인 도용에 무감한 국내 업계의 현실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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