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원전 적자' 한전 "전기요금 원가 공개하겠다"...정부에 반기?

안상희 기자
입력 2019.06.11 19:26 수정 2019.06.11 19:53
한국전력(015760)이 그동안 영업기밀로 취급해 온 전기요금 원가를 빠르면 올 하반기부터 공개하겠다고 밝혀 파장이 예상된다. 특히 한전의 전기요금 원가공개 발표는 사전에 정부와 협의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적자를 낸 한전이 전기료 할인에 따른 부담까지 떠안을 처지가 되자 ‘전기요금 원가공개'로 정부에 반기를 든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권기보 한국전력(015760)영업본부장은 11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주택용 전기요금 누진제 개편 공청회에서 두 차례나 전기요금 원가공개 방침을 밝혔다. 권 본부장은 "지금은 전기요금 청구서에 기본료와 사용료, 부가가치세 등이 기재되는데 정부와 긴밀히 협의해 공개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선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할 수 있도록 공개할 방침"이라고 했다.

한전이 용도별 원가를 공식성상에서 공개하겠다고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전기공급 도매‧소매 단계 비용을 소비자 요금청구서에 적시하는 방안도 추진하기로 했다.

권 본부장은 "공급원가는 전기를 쓰는 용도에 따라 산업용, 주택용, 농사용 등으로 구분돼 용도별로 차이가 있다"면서 "내부검토를 통해 실질적으로 내가 쓰는 전기용도에 대해 도소매가격이 어떻게 되는지 내용을 청구서에 게재하는 것을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소비자가 사용하는 전기의 용도별 도소매가격이 어떻게 산정되는지 청구서를 통해 공개한다는 것이다.

11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전기요금 누진제 개편 공청회./안상희 기자
한전은 산업부 측에 공급원가 공개 필요성에 대해 지속적으로 이야기 했지만, 이날 전기요금 원가공개 검토 방침 발표와 관련해 구체적 협의나 합의는 없었다고 했다.

이날 권 본부장은 전기요금 누진제 TF(태스크포스) 안에 대해 한전은 경청하는 입장이라면서도 ‘전기요금 원가공개’ 발언을 반복해서 했다. 이 때문에 탈원전 정책으로 지난해 2080억원의 영업손실(적자)을 낸 한전이 최근 정부의 전기료 할인(누진제 완화) 방침으로 인해 적자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불어날 것으로 예상되자 사전 협의 없이 ‘원가공개' 카드를 꺼내 정부에 반기를 든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이날 공청회는 지난 3일 TF가 제안한 누진제 개편안 3가지에 대한 국민 의견을 듣고자 마련됐다. 개편안은 ▲현행 누진체계를 유지하되 여름철에만 별도 누진 구간을 확대하는 방안(누진구간 확대안) ▲7~8월 여름철에만 누진 3단계를 폐지하는 방안(누진단계 축소안) ▲연중 단일 요금제안(누진제 폐지안) 3가지다. 모두 전기요금 인하를 담고 있는데, 요금을 깎아준 만큼 한전이 손실을 떠안아야 한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제시한 3가지 전기요금 할인 방안이 실현되면 한전의 부담은 최소 961억원에서 많게는 2985억원까지 늘어난다. 지난해에도 정부가 누진제를 한시적으로 완화하면서 한전이 3587억원을 부담했다. 하지만, TF는 3가지 누진제 개편안을 발표하면서 한전의 부담을 덜 방안은 제시하지 않고 공기업인 만큼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했다.

공청회에 참석한 패널들도 전기요금 원가가 공개되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강승진 산업기술대 교수는 "요금명세서에 발전비용, 연료비, 송전비, 판매비, 온실가스나 재생에너지비용 등 요금이 어떻게 구성되는지 소소하게 알려야 한다"며 "독일은 명세서에 상세히 나오니 수용성이 높다"고 했다. 송보경 E컨슈머 대표는 "지금 전기료나 누진제는 소비자가 알고 선택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이와 관련 박찬기 산업통상자원부 전력시장과장은 "한전은 유일한 전력판매사로 특수한 지위에 있다"며 "의도했든 안했든 공통적으로 나오는 지적이 (소비자에게 제공되는)정보가 부족하다는 것"이라며 "소비자 인식을 높이지 못한 것을 반성하고 한전과 함께 긴밀하게 협의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11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전기요금 누진제 개편 공청회에서 장병천 한전 소액주주행동 대표가 누진제 개편안이 한전의 부실을 초래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왼쪽 위는 그가 “패널들의 모든 출연료는 내가 부담할테니 한전은 적자를 부담하지 말아라”며 던진 100만원짜리 수표 2장./안상희 기자
이날 공청회장에서 한전 소액주주들은 "3가지 전기요금 개편안이 모두 한전의 적자와 귀결된다"며 반대 목소리를 냈다. 장병천 한전 소액주주행동 대표는 "정부가 선거를 앞두고 전기요금을 인하하겠다는 포퓰리즘 정책을 펼치고 있다"며 "이번 기회에 누진제 요금체계를 완전히 철폐하고 전기 사용량만큼 요금을 부담하는 대신 에너지 취약계층에 에너지 바우처(이용권)를 지급하는 새로운 요금제를 수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권기보 한전 영업본부장은 공청회가 끝난 후 "주가가 엄청 떨어져 주주들의 입장을 이해하며 난감하고 면목 없다"면서 "3가지 안 모두 한전에 부담을 주고 있어 이사들도 걱정을 많이 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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