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총 시즌 막바지…행동주의펀드 잇단 패배

전준범 기자
입력 2019.03.24 11:00
국민연금 등 목소리 냈지만 회사측 표대결 압승
"올해는 주주 행동주의 원년, 앞으로 더 늘 것"

주주 목소리가 한층 강화된 분위기 속에 그 어느 때보다 관심을 끌었던 올해 정기 주주총회 시즌이 막바지를 향해 가고 있다. 지금까지의 성적만 놓고 보면 기업 대주주는 행동주의 펀드와의 표대결에서 완승을 거두고 있다. 수탁자로서 적극적인 책임활동을 선언한 ‘큰손’ 국민연금도 체면을 잔뜩 구겼다. 그럼에도 전문가들은 올해를 기점으로 국내 주주활동 문화가 점점 활성화될 것으로 예상했다.

22일 오전 서울 서초구 현대자동차 본사에서 열린 정기 주주총회에서 의장인 이원희 현대차 사장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 박상훈 기자
◇엘리엇도 KCGI도 국민연금도 빈손

미국계 행동주의 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는 지난 22일 열린 현대차(005380)현대모비스(012330)주총에서 고배당 지급, 사외이사 선임 등을 요구했지만 원하는 걸 얻지 못했다. 엘리엇은 주총 전부터 장외 여론전을 적극적으로 펼치며 승기를 잡으려고 애썼으나 주주들은 오히려 압도적인 표 차이로 회사측 손을 들어줬다. 재계에서는 "엘리엇 의도와 달리 정의선 부회장의 존재감만 부각됐다"는 평가가 나왔다.

같은날 열린 세이브존I&C(067830)주총에서는 미국계 행동주의 펀드 홀드코자산운용이 회사가 제시한 배당금(주당 50원)의 8배에 달하는 배당금(주당 400원)을 안건으로 내세웠지만 소득 없이 발길을 돌려야 했다. 또다른 행동주의 펀드 SC펀더멘털도 21일 개최된 강남제비스코(000860)주총에서 다른 주주들의 지지를 얻는 데 실패했다.

‘강성부 펀드’로 불리는 토종 행동주의 펀드 KCGI는 이달 29일 열리는 한진칼(180640)주총에 안건조차 상정하지 못하게 됐다. "KCGI가 ‘주주제안을 하려면 회사 지분을 6개월 이상 보유해야 한다’는 상법상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는 한진칼 주장을 법원이 받아들여서다. 강성부 대표는 "깊은 무력감을 느낀다"고 했다.

행동주의 펀드는 아니지만 국민연금도 대주주와의 표대결에서 번번이 패배의 쓴 맛을 보고 있다. 국민연금은 올해부터 100여개 상장사 주총 안건에 대한 의결권 행사 방향을 주총 전에 미리 공개하고 있다. 시장 참여자들은 크게 우려했지만, 예상과 달리 지금까지는 국민연금이 반대표를 던진 모든 안건이 주총을 무사히 통과했다.

조선DB
◇이제 시작…더 활발해질 주주활동

대주주의 연이은 압승에 재계는 일단 한숨을 돌리면서도 걱정의 끈은 놓지 못하는 분위기다. 국내 자본시장에 적극적인 주주활동 기류가 조성된 이상 이번 주총 시즌과 같은 상황이 앞으로도 반복될 게 뻔하기 때문이다. 최남곤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2019년을 주주 행동주의 성장의 원년으로 기억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주요 기관들은 앞다퉈 스튜어드십코드(기관투자자의 의결권 행사지침) 도입에 나서고 있다. 지난해 국민연금에 이어 올해에는 공무원연금·사학연금·우정사업본부·한국투자공사 등이 책임투자 행보를 본격화했다. 한국투자신탁운용·KTB자산운용 등 민간 자산운용사도 이른바 ‘착한 기업’에 투자하는 펀드를 잇달아 선보이고 있다.

이상헌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올해 주총 시즌은 많은 대주주에게 주주 관련 정책을 점검하는 계기로 작용했을 것"이라며 "배당 확대, 이사회 독립성 제고 등을 통해 지주사의 지배구조가 개선되면 기업가치는 상승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재계에서는 기업의 장기 성장성보다 단기 이익을 더 추구하는 행동주의 펀드들의 난립을 계속 염려하고 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현대차그룹에 8조원이 넘는 배당을 요구한 엘리엇 사례처럼 기업 사정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 무리수가 주총 때마다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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