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로 직접 PT한 정태영 부회장…2700억 수출 계약 끌어내

이종현 기자
입력 2019.03.15 09:00
IBM재팬 자회사에 신용카드 IT 시스템 수출

"IBM과 손잡고 AI(인공지능) 챗봇을 도입했고 이제는 휴가가 필요없는 AI 상담원이 고객의 질문에 빠르게 답변하고 있습니다. 디지털 혁신은 피할 수 없습니다."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이 강조하고 있는 '글로벌'과 '디지털'이 일본에서 꽃을 피웠다. 현대카드는 최근 IBM재팬의 자회사인 '엑사 시스템즈'에 차세대 신용카드 정보기술(IT) 시스템인 'H-ALIS'를 수출하는데 성공했다고 15일 밝혔다.

H-ALIS는 현대카드의 IT 시스템을 일본 현지에 맞게 최적화한 것이다. 국내 금융회사가 자체 IT 시스템을 일본에 수출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 계약으로 현대카드는 향후 5년간 2700억원의 매출을 더할 수 있게 됐다. 단순히 시스템만 수출한 게 아니라 컨설팅 등 다양한 비즈니스를 함께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맹점 수수료 인하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내 카드업계에 모처럼 낭보였다.

정태영(왼쪽) 현대카드 부회장은 디지털과 글로벌에 방점을 찍고 현대카드를 이끌고 있다. /IBM 제공
현대카드가 한국보다 금융 선진국으로 불리는 일본에서 깜짝 성과를 낸 배경에는 정 부회장의 역할이 컸다. 일본은 2020년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현금 중심의 결제 시스템에 신용카드 결제를 더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일본에는 카드를 발급하는 기업만 300여개에 달하지만 이 중 자체 IT 시스템을 운영하는 곳은 100여개에 불과하다. 그마저도 한국 카드사의 기준에서 보면 10년은 뒤처진 낙후된 시스템이 대부분이다. 현금 중심의 결제 문화가 단단히 자리잡은 탓에 다른 금융업에 비해 신용카드업은 발전이 더딘 탓이다.

정 부회장은 이런 빈틈을 노렸다. 그는 매달 약 1억5000만건의 카드거래를 안정적으로 처리하고 있는 현대카드의 IT 시스템을 일본 현지에 맞게 계량한 H-ALIS를 만드는 작업을 이끌었다. 보안에 민감한 일본 금융권의 특성을 고려해 정보보안 분야에서 가장 권위 있는 국제표준인 ‘ISO27001’과 신용카드 산업 분야의 데이터 보호를 위한 표준인 ‘PCI-DSS’ 인증도 미리 획득했다. H-ALIS는 고객 정보를 암호화하고 분리하는 프로세스를 자체 내장하고 있어 보안성이 뛰어나다는 게 현대카드의 설명이다.

마지막 화룡정점도 정 부회장이 직접 찍었다. 정 부회장은 계약을 놓고 망설이던 일본 측 관계자들을 직접 만나 현대카드의 IT 시스템과 디지털 서비스에 대한 프리젠테이션을 직접 진행했다. 정 부회장은 일본어로 직접 능숙한 프리젠테이션을 진행해 일본 측 관계자들을 놀라게 했다는 후문이다.

현대카드 관계자는 "정 부회장은 현대카드가 앞선 IT 시스템을 바탕으로 고객에게 제공하는 다양한 디지털 서비스를 일본 측에 소개했다"며 "한 번이 아니라 여러 차례에 걸쳐 일본 측 관계자들을 만나 직접 프리젠테이션을 할 정도로 정 부회장이 공을 들인 프로젝트"라고 설명했다.

정태영 부회장이 직접 프리젠테이션한 H-ALIS의 일본어 설명. /현대카드 제공
실제로 현대카드의 H-ALIS는 ‘Open API’ 플랫폼을 적용하는 등 디지털 기능에 강점을 가지고 있다. 모바일 앱과 연동한 서비스를 손쉽게 개발할 수 있고, 단 이틀이면 카드 신상품을 별도 프로그램 없이 개발할 수 있을 정도로 상품 개발력도 뛰어나다. 정 부회장은 결제일 자유 선택, 카드 즉시발급, 모바일 앱으로 신용카드 사용조건을 설정할 수 있는 락&리밋 등 일본에 없던 현대카드의 다양한 디지털 서비스를 직접 시연하며 일본 측 관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일본 IT 컨설팅 전문업체인 뷰르가(Buerger) 컨설팅의 사토 마사노리 이사는 "H-ALIS는 기본적인 신용카드 업무 기능은 물론 모바일을 기반으로 한 디지털 서비스 등에도 강점을 지니고 있다"며 "특히 퍼블릭 클라우드 형태로 운영되는 시스템이어서 다양한 사업 확장에도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것이 장점"이라고 덧붙였다.

현대카드는 일본에서의 성공 사례를 활용해 해외 다른 지역으로도 적극적으로 사업을 확장할 계획이다. 현대카드 관계자는 "국내 신용카드 산업 초창기에 국내 카드사들은 일본의 IT 노하우를 배워 업무 시스템을 구축했다"며 "국내에서 치열한 경쟁을 통해 쌓은 디지털 역량을 바탕으로 이제는 역으로 일본에 IT 시스템을 수출하게 된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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