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에서도… 전세금 돌려주려 빚냈다

장상진 기자
입력 2019.02.11 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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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지는 '헬리오發 역전세난' 집주인들 현금 구하느라 발동동

서울 송파구 잠실동 잠실엘스 전용면적 84㎡ 한 채를 세놓은 A씨는 지난주 은행에서 5000만원을 빌려 세입자에게 송금했다. 계약 갱신을 앞둔 이 아파트 전세 시세가 재작년 2월보다 5000만원 내렸는데 세입자에게 돌려줄 현금이 없었기 때문이다. 전세 낀 아파트는 담보대출 받기 어렵기 때문에 세입자가 일단 동사무소에 전출 신고를 먼저 하고 A씨가 은행에서 돈을 빌린 뒤 세입자가 다시 전입신고를 하는 편법까지 동원했다. A씨는 "작년 가을만 해도 전세금을 더 올릴 수 있을 것 같은 분위기여서 이런 상황에 전혀 대비하지 못했다"고 했다.

10일 서울 강남권의 한 부동산 중개업소에 보증금을 대폭 낮춘 아파트 전세 물량을 알리는 전단이 잔뜩 붙어 있다. 서울 아파트 전세 시세는 지난주까지 15주 연속 하락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세 시세 하락으로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전세금을 되돌려주는 데 어려움을 겪는 '역(逆)전세난'이 지방을 거쳐 서울에서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통상 주택 임대 계약은 2년 단위로 이뤄지기 때문에 역전세난이 벌어진다는 건 전세 시세가 2년 전보다도 내렸다는 의미다. 전문가들은 "대규모 입주가 이뤄지는 지역 아파트나 낡은 재건축 아파트의 전세입자들은 계약 기간이 1년 이상 남아 있을 때 빨리 전세금 반환보증보험에 드는 게 좋다"고 말한다.

◇강남권에 나타난 역전세난

10일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작년 10월 마지막 주부터 시작된 서울 전세금 하락이 이달 첫째 주까지 15주 연속 진행 중이다. 하락 폭도 -0.01%에서 시작해 1월 마지막 주에는 -0.24%까지 높아졌다. 전세금이 '2년 전 수준' 아래로 내려간 지역이 아직 서울에서는 많지 않지만 송파구에서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잠실엘스 외에도 리센츠, 트리지움, 파크리오 등의 전세 시세가 2년 전보다 2000만~5000만원 내렸다.

가장 큰 원인으로 '헬리오시티 효과'가 꼽힌다. 송파구에서는 작년 말 1만 가구 규모 단지 '헬리오시티'가 입주를 시작하면서 새 아파트 수천 가구가 전세 시장에 쏟아져 나왔다.

헬리오시티 효과는 구(區) 경계선도 넘어 헬리오시티에서 직선거리로 약 4㎞ 떨어진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도 전세 시세가 2년 전보다 5000만원 내렸다. 대치동 에덴공인중개 관계자는 "은마아파트는 전세 시세가 잘 변하지 않는데, 헬리오시티 입주와 동시에 전세 문의가 줄면서 전세금이 뚝뚝 떨어졌다"고 말했다.

주택임대사업자 급증도 전세금 상승을 막는 효과가 있다. 정부에 등록한 임대사업자는 임대료를 1년에 5%까지밖에 못 올린다. 2017년 말 98만 채이던 전국 등록 임대주택 수는 정부가 각종 세제 혜택을 주면서 작년 말 136만 채로 급증했다.

전세 자금 대출이 막힌 것도 한 원인이다. 정부는 작년 9·13 부동산 대책에서 집을 두 채 이상 가진 가구의 전세 자금 대출을 완전히 틀어막았고, 집 한 채 가진 가구도 전세 자금 대출 이자를 상대적으로 더 높였다.

◇전세 보증 지급금, 1년 새 4배로

전국적으로 역전세난이 확산하고 있다. 10일 국회 정무위원회 장병완 의원(민주평화당)에 따르면, 돈 없는 집주인을 대신해 전세금 보증 회사가 세입자에게 전세금을 돌려준 액수는 재작년 398억원에서 작년 1607억원으로 급증했다.

우리은행은 최근 '서울 아파트 전세금이 평균 7.4% 이상 하락할 경우 역전세난이 본격화할 것'이라는 취지의 보고서를 냈다. 작년 말 기준 서울 아파트 전용 85㎡의 평균 전세금이 4억3426만원으로, 2016년 말 4억531만원보다 7.4% 정도 높은데 이 상승분을 반납할 경우, 역전세난이 올 것이라고 본 것이다.

서울에서 역전세난이 본격화할 것인지에 대한 전문가들의 전망은 엇갈린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전문위원은 "올해는 철거되는 아파트에 비해 새로 입주하는 아파트가 많고, 시장은 침체를 넘어 동결되다시피 한 상태"라며 "여러 조건을 봤을 때 역전세난이 길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안명숙 우리은행 부동산투자지원센터장은 "전세금이 서울 전체 평균으로 7%까지 내리긴 쉽지 않겠지만, 대규모 입주가 몰리는 송파·강동권과 강남권 전역의 낡은 재건축 아파트들은 영향을 받을 것"이라며 "전세보증보험은 잔여 계약 기간이 1년 이상일 때만 가입할 수 있는 만큼, 위험 지역에 전세로 살고 있다면 빨리 보험에 드는 게 좋다"고 말했다.

반면, 고준석 동국대 겸임교수는 "2008년에도 집값 하락과 잠실권 2만 가구 새 아파트 입주가 겹치며 강남권 전세 시세가 수억원 내린 적이 있지만, 바로 다음 재계약 기간이 왔을 때 원래 가격을 회복하거나 더 올랐다"고 했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재건축·재개발 규제 여파로 2021년 이후에는 다시 입주가 급감하기 때문에 전세 시세도 반등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선일보 B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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