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에 밀린 한국 車산업...도요타·VW보다 생산성 낮고 임금은 높아

진상훈 기자
입력 2019.02.11 04:00
생산량 기준 세계 5위였던 한국 자동차 산업의 ‘성장 엔진’이 빠르게 식어가고 있다. 노동시장의 고임금, 저효율 구조와 매년 반복되는 파업, GM의 한국공장 폐쇄 등이 겹치면서 생산대수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는 10일 발표한 ‘2018년 10대 자동차 생산국 현황’ 자료에서 지난해 한국의 자동차 생산량이 전년대비 2.1% 감소한 402만9000대에 그쳤다고 전했다. 세계 자동차 생산량 순위도 6위에서 7위로 한 계단 하락했다. 2017년 생산량 7위였던 멕시코는 전년대비 1% 증가한 411만대를 생산하며 한국을 제치고 6위에 이름을 올렸다.

경직된 노동시장 구조, 한국GM 군산공장 폐쇄 등으로 인해 지난해 한국의 자동차 생산량이 세계 7위로 하락했다. 사진은 지난해 GM 본사의 폐쇄 결정으로 가동을 멈춘 한국GM 군산공장 내부/조선일보DB
2000년대 들어 가동률 95%를 돌파하며 빠른 성장세를 보였던 한국 자동차 산업은 지난 2015년 생산량 455만6000대를 기록, 중국과 미국, 일본, 독일에 이어 세계 5위까지 올라섰다.

그러나 2016년에는 422만9000대로 감소하며 인도에 5위를 내줬고 2년만에 멕시코에도 밀리는 처지가 됐다. 세계 10대 자동차 생산국 중 3년 연속 생산량이 감소한 국가는 한국 뿐이다.

◇ ‘귀족’이 된 韓 노조…도요타·폴크스바겐보다 생산성 낮고 임금은 높아

지난해 한국 자동차 생산량이 감소한 데는 한국GM 군산공장의 폐쇄, 내수와 수출의 동반 부진 등이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자동차 업계와 전문가들은 한국의 경직된 노동시장과 대립적 노사관계로 고비용, 저효율 문제가 심화되면서 생산 경쟁력이 무너지고 있는 것이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차량 1대당 평균 생산시간(HPV·Hour Per Vehicle) 지표에서 국내 자동차 업체들의 경쟁력은 이미 ‘낙제점’ 수준에 머물고 있다. 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지난 2015년 기준 현대자동차(005380)국내공장의 HPV는 26.8시간으로 도요타(24.1시간), 포드(21.3시간), GM(23.4시간) 등 주요 경쟁사들보다 길었다.

각 공장별 HPV를 비교해 보면 국내 자동차 공장의 저조한 생산성이 더욱 눈에 띈다. 르노가 운영하는 스페인 바야돌리드공장은 16.24시간, 포드의 독일 쾰른공장은 16.75시간으로 현대차보다 효율이 훨씬 높았다. 반면 르노삼성 부산공장은 20.86시간으로 국내에서는 생산성이 가장 높았지만, 해외 공장에는 뒤처졌다. 지난해 문을 닫은 한국GM 군산공장은 HPV가 르노 바야돌리드공장의 세 배가 넘는 59.31시간에 달했다.

한국 자동차 산업은 생산성이 크게 떨어지는데 비해 임금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자동차산업협회가 2016년 당시 환율을 원화로 환산해 주요 자동차 업체들의 평균 임금을 조사한 결과 한국 완성차 5개사의 임금은 9213만원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도요타의 평균 임금은 9104만원이었고 폴크스바겐 역시 8040만원으로 국내 완성차 평균을 밑돌았다.

강성노조와 대립적 노사문화는 한국 자동차 산업의 뿌리 깊은 문제점으로 꼽힌다. 사진은 지난달 31일 광주광역시청 앞에서 광주형 일자리 투자협약에 반발해 시위를 하는 기아차 노조원들/조선일보DB
문제는 강성노조 주도로 매년 임금협상 과정에서 파업이 연례행사처럼 진행돼 고질적인 고비용, 저효율 구조가 더욱 굳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현대차의 경우 지난 2013년부터 2017년까지 5년간 파업으로 7조5000억원에 이르는 생산 차질을 겪었다. 같은 기간 기아자동차(000270)도 파업에 따른 생산 차질 합산액이 4조4000억원에 달했다.

그 동안 ‘노사화합의 모범생’으로 불렸던 르노삼성마저도 지난해 임금협상을 마무리짓지 못한 채 해를 넘겨 부분파업을 벌이고 있다. 지난해 10월부터 총 28차례, 104시간에 걸친 부분파업으로 르노삼성은 5000여대의 자동차 생산 차질을 겪었다.

◇ GM·르노 한국 철수 움직임…車 산업 ‘코리아 엑소더스’ 불 붙나

이처럼 한국 자동차 산업의 생산 경쟁력이 떨어지면서 국내에서 가동을 줄이는 업체들도 늘고 있다. 이 때문에 앞으로도 한국의 자동차 생산순위는 계속 떨어질 수 밖에 없다는 전망이 많다.

한국GM은 이미 지난해 군산공장을 폐쇄한데 이어 연구개발(R&D) 법인을 분리해 국내 생산량을 구조조정하기 위한 준비를 마쳤다. 한국GM 창원공장의 가동률은 지난해 82%에서 현재는 50% 이하로 떨어졌고 부평2공장도 30% 밑으로 하락했다. 신차로 배정된 크로스오버유틸리티차량(CUV)의 생산이 시작되는 2022년까지 국내 공장의 생산량은 계속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르노삼성 역시 부산공장이 올해 9월로 위탁생산 계약이 끝나는 닛산 로그의 후속물량을 배정받지 못할 위기에 처했다. 로스 모저스 르노그룹 제조총괄 부회장은 최근 르노삼성 임직원들에게 보낸 메시지를 통해 "파업을 멈추지 않을 경우 신차 생산배정이 어려울 것"이라고 경고했다.

멕시코는 저렴한 인건비와 높은 생산성을 무기로 글로벌 자동차 기업들을 유치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 2016년 9월 멕시코 누에보레온주의 기아차 멕시코 공장 준공식에서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가운데)과 일데폰소 구아하르도 비야레알(왼쪽) 멕시코 연방 경제부 장관이 출고 차량에 서명하는 모습/기아차 제공
반면 생산량 순위에서 한국을 제친 인도와 멕시코는 글로벌 자동차 업체들의 진출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멕시코의 경우 2016년 기준 하루 평균 임금이 약 40달러로 미국의 30% 수준에 불과한데다, 북미와 남미 등 인근에 대규모 시장을 두고 있어 GM, 르노, 도요타, BMW 등 글로벌 기업들이 앞다퉈 공장을 세우고 있다. 기아차도 2016년 멕시코 누에보레온주(州)에 북미 수출용 차량 공장을 완공해 운영 중이다.

인도는 거대한 시장과 빠른 성장성, 저렴한 인건비 등이 강점으로 부각된다. 미국 자동차전문지 오토모티브에 따르면 지난해 인도의 자동차 판매량은 전년대비 8.3% 증가한 399만대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중국 자동차 판매량은 2.8% 줄었고 미국은 0.6% 증가하는데 그쳤다.

지난해 현대차 인도 공장의 생산량은 전년대비 5.2% 증가한 71만3108대를 기록, 최초로 연간 생산대수 70만대를 돌파했다. 기아차의 인도 첫 생산시설인 아난타푸르공장도 올해부터 본격 가동된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시장 규모는 작고 인건비는 높은데 매년 강성노조와 힘든 싸움까지 벌여야 하는 한국은 이미 자동차 생산 측면에서 모든 매력을 잃었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광주형 일자리 문제로 금속노조가 또 파업을 예고하면서 올해 생산량은 더욱 줄어들 가능성이 커졌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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