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빚 시한폭탄, 취약계층부터 카운트다운

정한국 기자 최종석 기자 노도일 인턴기자(연세대 경제학과 4년)
입력 2019.01.18 03:21

작년말 2금융권 연체율 9.6%… 1년새 1.2%p 치솟아 역대 최고
법정 최고금리 인하 정책으로 저축銀 등 대출 심사 까다로워져 서민들, 사채시장으로 내몰려

대기업의 파견업체에 근무하는 전자제품 수리기사 김모(38)씨. 그는 작년 8월 저축은행, 대부업체에서까지 문전박대를 당한 뒤 법원에 개인회생을 신청했다. 생활비가 부족해 저축은행에서 1800만원을 빌린 게 화근이 됐다. 매달 원금과 이자를 합쳐 210만원을 갚느라 맞벌이하는 아내도 빚을 내야 했다. 그리고 지난해 김씨에 이어 아내도 추가 대출이 끊겼다. 김씨는 "인터넷에서 저축은행·대부업체 수십 곳을 검색했는데 우리 부부에게 돈을 빌려준다는 곳은 길거리에 '일수' 명함을 뿌린 사채업체뿐이었다"고 했다.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한국 경제의 시한폭탄인 막대한 가계 부채 문제가 김씨 같은 서민층에서부터 폭발할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우리나라 가계부채는 1500조원에 이른다.

지난해 12월 초 서울 서초구 서울회생법원 복도 풍경. 요즘 회생법원은 빚을 감당하지 못해 회생·파산 절차를 밟는 개인, 법인 관계자들로 북적인다. /김연정 객원기자
무엇보다 서민과 자영업자들이 주로 이용하는 2금융권의 대출 연체율이 눈에 띄게 치솟고 있다. 17일 한국대부금융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국내 상위 19개 대부업체의 평균 연체율은 9.6%였다. 이는 1년 전보다 1.2%포인트 오른 것으로 협회가 연체율을 집계하기 시작한 2015년 이후 연말 기준 역대 최고치다. '연체율'은 금융회사 전체 대출금 중 원리금 상환이 제때(저축은행은 한 달) 이뤄지지 않은 대출금의 비율을 뜻한다. 대부업계 관계자는 "3개월 이상 연체 부실채권은 매각해버리는데 이 숫자까지 더하면 실제 연체 규모는 더 클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가파른 최저임금 상승으로 어려움을 겪는 자영업자의 저축은행 대출 연체율은 상승 속도가 빨라졌다. 지난해 말 기준 A저축은행의 자영업자(개인사업자) 대출 연체율은 6.3%로 연초(3.4%)에 비해 두 배 가까운 수준으로 가파르게 올랐다.

미국발(發) 금리 인상 여파로 시장금리가 오르는 것도 서민층 연체율 상승의 또 다른 요인이다. 지난해 11월 한국은행이 1년 만에 기준금리를 인상하면서 시중은행의 신용대출 평균 금리는 작년 9월 4.39%에서 11월 4.56%로 두 달 새 0.17%포인트 상승했다. 김상봉 한성대 교수(경제학)는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주 52시간 근로제 도입 등으로 고용 시장에서 밀려나는 서민들이 늘고 있다"며 "여기에 금리까지 오르면서 이자조차 막기 어려워지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정부가 지난해 2월 이후 법정 최고 금리를 연 27.9%에서 24%로 내린 이후, 쪼들린 금융회사들이 대출 심사를 강화하면서 그 불똥이 신용등급 7~10등급의 저신용자들에게 튀었다. 저신용자들에 대한 대부업체의 대출 승인율은 2017년 1~9월 17.0%에서 2018년 1~9월 12.6%로 4.4%포인트가 낮아졌다. 저신용자 10명 중 9명은 대부업체에서도 대출을 거부당했다는 것이다. A저축은행의 경우 2018년 1월 10%였던 승인율이 12월에는 6.7%가 됐다.

저신용자들은 2금융권에서 밀려나 사채 시장으로 내몰리고, 빚 상환마저 어렵게 된 서민들이 법원에 부채 탕감을 신청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지난해 1~11월 법원에 8만4000명이 개인회생을 신청해 전년 같은 기간보다 9000건 늘어났다.

박덕배 서민금융연구원 부원장은 "최고 금리 인하 취지와 달리 취약 계층이 가장 먼저 피해를 보고 있다"며 "시장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탄력적인 정책을 펼치지 않으면 사채로 내몰리는 금융 소외층이 더 늘어날 위험이 있다"고 했다.


조선일보 A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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