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원전 공화국]② 송영길은 왜? 민주당 뒤흔든 탈원전 속도조절론

안상희 기자
입력 2019.01.16 16:52
새해 들어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내에서 문재인 정부의 급진적 탈원전 정책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당 지도부와 청와대가 긴급 진화에 나섰지만, 다른 여당 의원들도 탈원전 속도조절이 필요하다는 주장에 동조하면서 논란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의원은 지난 11일 원자력계 신년인사회에서 "(정부가 백지화 방침을 밝힌) 신한울 원전 3·4호기의 매몰 비용이 7000억원 든다. 오래된 원전과 (석탄)화력발전소를 중단하고 대신 신한울 3·4호기는 짓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신한울 원전 건설을 전면 중단시킨 현 정부의 결정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주장이었다. 집권 여당의 중진의원이 정권의 핵심 정책을 정면으로 비판했다는 점에서 파장이 컸다.

14일 송영길 민주당 의원 페이스북에 올라온 글 일부. 그는 신한울 3,4호기를 노후된 화력발전소와 스왑(교환)하는 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송영길 민주당 의원 페이스북 캡쳐
두산중공업 등 탈원전 정책으로 위기를 맞은 원전 업계는 송 의원의 주장에 지지를 보냈다. 현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반대해온 야당은 "용기있는 발언"이라고 환영했다. 여당에서도 송 의원에 동조하는 발언이 나왔다. 최운열 의원은 송 의원에게 "좋은 화두를 던졌다. 이번 일을 계기로 공론의 장이 마련되면 좋겠다"는 문자를 보내고, "신한울 3·4호기는 설계와 부지 조성이 돼 있고 해당 지역 주민들이 원하는 사업"이라고 밝혔다.

논란이 커지자 청와대는 14일 대변인이 나서 "이미 논의가 끝난 사안"이라고 진화에 나섰다. 하지만 송 의원은 15일 페이스북을 통해 신한울 3·4호기 건설을 재개해야 한다고 다시 주장하며,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신고리 5·6호기 공사현장의 2017년 7월 초 모습. 오른쪽은 신고리 3·4호기다./조선일보 DB
송 의원을 필두로 여당 내에서 탈원전 속도론이 불붙는 가장 큰 이유는 탈원전 정책의 문제점이 예상보다 크고, 일찍 드러났기 때문이다.

정부의 탈원전 정책이 해외에 알려지면서 원전 수출은 사실상 중단 위기에 처했다. 국내에선 태양광·풍력 등 신재생 에너지가 당초 예상과 달리 원전을 대체할 수 없다는 사실이 속속 드러났다. 태양광·풍력의 전력 생산량이 원전보다 적고, 비용이 많이 들며, 수명이 다한 후엔 처리 곤란한 폐기물까지 나온다는 점이 밝혀졌다. 태양광 사업 과정에서 각종 부정과 탈법까지 발생하면서 신재생 에너지에 대한 국민적 기대감은 크게 줄었다.

한국전력과 한국수력원자력의 실적이 크게 악화해 전기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급진적 탈원전 정책에 대한 여론은 더욱 악화했다. 더불어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선거와 지지율이 가장 중요한 국회의원들 입장에서는 여론에 민감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총대는 송 의원이 멨지만, 민주당의 몇몇 의원들 사이에선 탈원전 정책의 속도조절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는 의견도 나온다. 김상협 카이스트 지속발전 센터장(우리들의 미래 이사장)은 "현 정권이 출범 초기 탈원전에 대해 사려깊게 총의를 모아 정책을 추진했다기보다 극단적인 소수의 의견을 바탕으로 다소 즉흥적으로 진행해, 여당 내부에서도 반성과 수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있는 것으로 안다"면서 "탈원전 정책의 부작용과 여론의 반발이 커졌지만 유연한 정책 수정은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의 기후변화대응 및 에너지전환산업육성특위 위원장을 맡고 있는 송 의원은 국회에서 몇 안되는 에너지 전문가로 꼽힌다. 현 정부 들어 4차 산업혁명과 에너지전환 정책토론회, 동북아 수퍼그리드 추진방안 모색 토론회 등 주요 에너지 관련 토론회를 주도, 전문가들과 교류하며 글로벌 에너지 정책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쌓았다. 송 의원이 소신을 굽히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송영길 의원의 당내 정치적 입지도 이번 발언의 배경으로 꼽힌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송 의원은 지난해 전당대회에서 당권주자 3명 중 유일한 비문(비 문재인) 계열이었다"며 "차기 대선에 도전한다는 큰 꿈이 있는 송 의원이 문 대통령 집권 3년차를 맞아 자연스럽게 정책적 차별화를 모색하는 것 같다"고 해석했다.

더불어민주당 지도부는 송 의원의 발언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탈원전 속도조절론이 자칫 여당 분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감 때문이다. 홍영표 원내대표는 "(송 의원) 개인 의견일 뿐"이라고 평가절하했다. 홍 원내대표는 "문재인 정부가 에너지 정책에서 큰 방향 전환을 했고 공론화위 등 여러 과정을 거쳐 이렇게 정한 것 아니냐"며 "(정책을) 어느 날 뒤집는 것은 정부로서는 할 수 없다"고 했다.

전임 원내대표인 우원식 의원은 "시대의 변화를 잘못 읽은 적절치 못한 발언"이라며 "송 의원의 발언에 대해 매우 유감으로 생각한다"고 했다. 신한울 3·4호기 건설을 재개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15일 청와대에서 열린 ‘2019 기업인과의 대화’에서도 나왔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은 신한울 3·4호기를 포함한 원전 신규 건설은 없다는 뜻을 밝혔다.

집권 더불어민주당 내에서 탈원전 정책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하는 의원들은 아직은 소수다. 하지만 송영길 의원의 ‘탈원전 속도조절론' 발언을 계기로 현실적인 탈원전 정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는 점차 힘을 얻을 것으로 정치권은 전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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