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영화 만들더니...CJ, 영화시장 3위 '추락'

이재은 기자
입력 2019.01.09 06:00
콘텐츠 강자인 CJ가 영화 시장에서 힘을 못쓰고 있다. CJ ENM(035760)(이하 CJ)은 지난해 배급한 영화들이 저조한 흥행 실적을 거두면서 15년간 지켜온 영화 시장 1위 자리를 경쟁사 롯데엔터테인먼트(이하 롯데)에 내줬다. 2위마저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에 내주고, CJ는 3위로 전락했다.

지난해 8월 개봉한 영화 ‘신과 함께-인과 연’은 누적 관객수 1227만명을 기록했다. 2017년 말 개봉한 전작 ‘신과 함께-죄와 벌’도 누적 1441만 관객을 끌어모았다. /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롯데는 지난해 1~11월 매출 2953억원, 관객수 3552만명(점유율 18.3%)을 기록해 매출·관객점유율 1위를 차지했다. 지난해 8월 개봉한 ‘신과 함께-인과 연’은 누적 관객수 1227만명을 기록하면서 국내 흥행 영화 1위에 올랐다. 롯데는 이밖에도 지난해 14편의 영화를 배급했다. 이중 ‘미션 임파서블6’와 ‘완벽한 타인’ 등이 흥행몰이를 하면서 기대 이상의 성적을 거뒀다.

국내 영화 시장 부동의 1위였던 CJ는 지난해 롯데와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에 이어 3위로 순위가 대폭 하락했다.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CJ는 지난해 1~11월 매출 1995억원, 관객 2429만명(점유율 12.5%)에 그쳤다. 2003년 이후 지켜온 국내 배급사 흥행수익 점유율 1위 자리를 15년 만에 롯데에 뺏긴 것이다.

작년 CJ ENM이 투자배급한 골든슬럼버, 공작, PMC: 더벙커
그동안 CJ는 1000만 영화를 꾸준히 선보였으나, 지난해에는 이런 흥행작을 내놓지 못했다. 지난해 CJ가 투자·배급한 영화 9편 중 손익분기점을 넘긴 작품은 그것만이 내 세상(342만명), 국가부도의 날(370만명), 공작(497만명) 등 4편에 그쳤다. 이마저도 해외 판권과 VOD 수익으로 간신히 손익분기점을 맞춘 것이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콘텐츠 업계 관계자는 "CJ가 방송과 음악 사업에서는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으나, 영화 사업은 기대작들이 줄줄이 흥행에 실패하면서 적자를 내고 있다"고 말했다. 일례로 지난해 CJ가 배급한 ‘협상’은 제작비 100억원이 투입돼 손익분기점이 300만명이었지만, 관객은 불과 197만명을 모으는 데 그쳤다.

‘보헤미안 랩소디’는 누적 관객수 980만명을 기록하면서 한국에서 ‘퀸 열풍’을 일으켰다. /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제공
업계는 CJ가 100억원이 넘는 제작비를 투입해야 하는 대작에만 치중하는 과정에서, 적은 예산으로도 흥행에 성공할 수 있는 좋은 영화 소재를 발굴하지 못한 점을 부진의 원인으로 꼽았다. 작년에는 ‘보헤미안 랩소디’, ‘완벽한 타인’, ‘신과 함께’ 등 색다른 소재의 영화가 선전했는데, CJ는 과거의 성공 공식에 의존하다가 정치색이 짙은 영화들만 반복적으로 배급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해 11월 개봉한 ‘국가부도의 날’의 경우 영화 내용과 사실이 다르다는 지적이 잇따르면서 팩트 논란에 휩싸였다. 영화는 한국은행을 선(善), 재정경제원(현 기획재정부)은 재벌과 결탁한 악(惡)으로 묘사한다. 이런 이분법적인 선악 구도가 현실에는 없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자 보헤미안 랩소디처럼 더 길게가지 못하고 대부분 극장에서 상영을 중단했다.

현실과 다른 줄거리로 팩트논란에 휩싸인 영화 ‘국가부도의 날’
이밖에도 CJ는 ‘골든슬럼버’ ‘공작’ ‘PMC: 더 벙커’ 등 정치 음모론을 다룬 영화를 속속 선보였으나, 대부분 줄거리가 미흡해 영화의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이유로 흥행에 실패했다.

CJ가 외실만 다지다가 좋은 소재와 시나리오를 보는 눈을 잃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영화 업계 한 관계자는 "‘신과 함께’의 경우 제작진과 감독이 먼저 CJ를 찾아가 투자·배급을 요청했지만 CJ는 흥행이 어렵다고 판단하고 거절했다"고 말했다. 이후 ‘신과 함께’ 2편의 배급을 결정한 롯데가 성공의 열매를 거뒀다.

CJ는 2014년 개봉한 ‘명량(1761만명)’이 대성공을 거둔 이후 수백억원대 제작비를 요구하는 블록버스터 영화 제작에 열을 올리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CJ ENM은 지난 2016년 제작사 JK필름을 인수, 영화 제작에도 발을 들였다. 업계 관계자는 "CJ가 JK필름을 키우고 100억원대 대작에 투자를 집중하다가 핵심 인재를 잃고 시대 흐름을 읽지 못했다"고 말했다.

대중의 선호를 그때그때 파악해서 흥행이 될 작품을 선택해야 하는 영화 시장에서 감각이 뛰어난 인재를 잃는 것은 치명적일 수 있다는 것이 업계의 설명이다. CJ ENM 퇴직자 출신의 한 영화업계 관계자는 "줄서기와 언론플레이에 능한 주요 경영진이 일을 잘 못해서 이 사단이 났다"면서 "문제는 이미 조직 문화가 물들어서 일 잘하는 핵심 실무진이 다른 회사로 이직하거나 이직을 준비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국내 투자배급사 지형이 바뀌면서 앞으로 극장가 경쟁은 더 치열해질 전망이다. 과거 국내 영화 산업은 CJ, 롯데, 쇼박스, NEW 등 대형 배급사가 주도하는 구조였다. 그러나 몇 년 전부터 폭스, 워너브라더스 등 해외 대형 투자배급사가 직접 국내 영화 투자배급을 시작했다.

메리크리스마스, 에이스 메이커 무비웍스, 키위미디어그룹, 셀트리온엔터테인먼트 등 자본력과 기획력을 고루 갖춘 강소 배급사들도 가세했다. 국내 대표 모바일 기업 네이버와 카카오도 콘텐츠 사업을 강화하면서 인재 유치에 적극 나서고 있다.

여기에 초대형 TV와 모니터의 가격이 저렴해지고 넷플릭스처럼 영화관에 가지 않아도 고품질의 콘텐츠를 인터넷과 스마트폰으로 즐길 수 있는 스트리밍 서비스가 급성장했다.

이와 관련 CJ ENM 관계자는 "지난해 영화시장 순위 하락은 일시적인 현장이며, 올해는 다시 1위를 탈환할 것"이라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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