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車산업, 물 들어올 때 노젓자"는 대통령 말 맞나

진상훈 기자
입력 2018.11.23 14:03
자동차 업계 "연쇄도산 눈 앞인데…"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0일 국무회의에서 "자동차 산업은 수출 감소와 구조조정 등으로 어려움을 겪으며 생산이 지난해보다 감소하다가 8월부터 다시 증가하기 시작했다"며 "이는 세계적인 보호무역주의 확산과 미·중 무역분쟁 등 어려운 여건에서도 기업들의 투자확대와 상생협력으로 일궈낸 반가운 소식"이라고 발언했다. 문 대통령은 "물이 들어왔을 때 노를 저어야 한다"는 말도 했다.

지난 20일 국무회의를 주재하며 발언하는 문재인 대통령/연합뉴스
자동차 업계에서는 이에 대해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발언"이라는 평가가 많다. 문 대통령은 8월 이후 상황이 개선되고 있다고 평가했지만, 실상은 지난해부터 이어진 완성차 업체들의 판매 감소와 실적 부진이 최근 더욱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국내 완성차 업체의 1차 협력사 대표는 "최근 한국GM의 철수 가능성이 다시 고개를 들고 현대·기아차 노조가 파업에 나서는 등 시장 밖의 각종 악재로 자동차 업계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① 8~10월 국내 생산은 ‘파업 기저효과’로 전년比 6.4% 증가…글로벌 판매량은 감소

"8월 이후 자동차 생산이 증가하고 있다"는 문 대통령의 발언은 맞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지난 8월부터 10월까지 현대자동차(005380), 기아자동차(000270)등 국내 완성차 5개사와 대우버스, 타타대우 등 상용차 2개사의 국내 생산대수는 총 97만37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 91만1597대에 비해 6.4% 증가했다.

일단 수치로 보면 8월 이후 생산대수는 늘었다. 하지만, 여기에는 ‘파업 기저효과’가 있다. 지난해는 임금협상 과정에서 노조가 파업을 벌여 생산 차질을 겪었지만, 올해는 현대·기아차가 여름 휴가 전 협상을 끝내 자연스럽게 생산량이 증가한 것이다.

특히 지난해 8월에는 현대차 노조의 파업이 가장 빈번하게 일어났다. 당시 한 달간 현대차 노조는 총 8차례에 걸친 부분파업을 벌였고 현대차는 극심한 생산 차질을 감수해야 했다. 대신 올해 8월은 공장이 정상 가동됐다. 이 때문에 현대차의 국내 생산량은 지난해 8월 8만5454대에서 올해 8월은 14만6821대로 71.8% 증가했다.

8월은 자동차 노조의 파업 여부에 따른 생산량 변동이 심한 시기다. 예로 현대차의 경우 지난 2016년 8월에는 노조의 빈번한 부분파업으로 생산대수가 7만5571대에 그쳤지만, 2015년 8월에는 파업이 없어 생산대수는 12만1861대에 달했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1개월치 생산량은 노조의 파업 등 각종 변수가 작용할 수 있어 업황을 객관적으로 보여주기 어려운 지표"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최근의 자동차 업계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려면 생산량이 아닌 판매량을 기준으로 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8월부터 10월까지 국내 완성차 5개사의 전체 판매대수는 206만6425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 209만9696대에 비해 1.2% 감소했다.

한 자동차 부품업체 관계자가 가동을 멈춘 생산라인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다. 1차 부품사인 이 업체는 올들어 완성차 판매 감소로 수주가 줄어 경영난을 겪고 있다./진상훈 기자
현대차의 경우 8월 내수와 해외 판매를 합친 글로벌 총 판매량은 전년동월대비 9.9% 증가했다. 그러나 9월 들어서는 추석 연휴에 따른 조업일수 감소로 6% 줄었다가, 10월에는 다시 지난해 연휴로 인한 기저효과로 0.9% 늘었다. 8월부터 10월까지 현대차의 전체 판매량은 118만2521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2% 증가했다.

그러나 나머지 4개사의 8월부터 10월까지 판매량은 모두 전년동기대비 줄었다. 기아차는 3개월간 70만4353대로 지난해보다 1.4%, 쌍용자동차(003620)는 3만5212대로 1.2% 각각 감소했다.

한국GM과 르노삼성의 상황은 더욱 처참했다. 3개월간 한국GM의 전체 판매대수는 9만8394대로 지난해보다 15.3% 줄었다. 르노삼성은 4만5945대로 29.7%가 감소했다.

② 현대차, 3분기 영업이익 전년比 76% 급감…美·中 시장 부진 계속돼

끝모를 판매 부진은 그대로 실적 악화로 이어지고 있다. 특히 국내 완성차 업계를 주도하는 현대·기아차는 3분기 들어 영업이익이 지난해보다 훨씬 큰 폭으로 감소하며 벼랑 끝에 몰린 상황이다.

현대차의 올 3분기 영업이익은 2889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1조2042억원에 비해 76% 급감했다. 판매실적이 본격적으로 꺾이기 전인 2014년 8.5%였던 영업이익률은 시중 은행의 정기예금 금리에도 못 미치는 1.2%까지 떨어졌다.

기아차 역시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다. 기아차의 3분기 영업이익은 1173억원으로 전년동기대비 흑자전환했지만, 의미가 있는 실적 개선은 아니다. 지난해 3분기에는 통상임금 1조원의 비용이 회계에 반영되면서 4270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올 3분기 매출액은 14조743억원으로 전년동기대비 0.2% 감소해 최근 판매 부진의 여파를 그대로 보여줬다.

국내 자동차 업계는 최악의 실적 부진 속에서 강성노조와의 마찰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사진은 지난달 회사의 ‘광주형 일자리’ 사업 참여를 저지하기 위해 집회를 가진 현대차 노조/금속노조 현대차지부 홈페이지
최근까지도 현대·기아차가 고전하는 것은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인 중국과 미국에서 판매 부진이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현대·기아차는 세단 중심의 노후화된 판매차종 라인업을 제 때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중심으로 바꾸지 못해 미국에서의 판매량이 눈에 띄게 줄었다. 중국에서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 따른 반한감정으로 역시 판매실적이 악화됐다.

올들어서도 상황은 개선되지 못하고 있다. 현대차의 경우 올들어 10월까지 미국 시장 판매량은 55만4726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8% 감소했다. 중국 시장에서도 상반기에는 다소 개선되는 모습을 보였지만, 하반기 들어 다시 판매량이 꺾이고 있다. 지난달 중국에서 현대차와 기아차의 판매량은 각각 전년동월대비 12.5%, 15.3% 감소했다.

③ 한국GM, 다시 철수 위기…지역경제도 ‘붕괴 위기’

문제는 끝모를 위기가 비단 현대·기아차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한동안 쉐보레 브랜드를 앞세워 국내 시장에서 선전했던 한국GM은 올들어 판매 부진과 함께 생산시설 철수 우려까지 겹치며 벼랑 끝에 몰리고 있다.

제너럴모터스(GM) 본사는 지난 2월 한국GM 군산공장을 전격 폐쇄하며 한국 시장을 떠날 수 있다는 경고 메시지를 던졌다. 산업은행이 부랴부랴 한국GM에 8100억원의 공적자금을 출자하기로 합의하면서 한국GM 사태는 잠시 수면 밑으로 가라앉았지만, 최근 연구개발(R&D) 법인을 분리하면서 다시 철수 위기가 재점화되고 있다.

지난 2월 폐쇄된 한국GM 군산공장/조선일보DB
한국GM 노조는 본사의 R&D 법인 분리 결정이 향후 한국에서 생산라인을 정리하기 위한 사전작업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올 상반기 ‘졸속협상’으로 GM에 철수 빌미를 남겨뒀던 산은은 최근 공적자금 8100억원 가운데 절반은 집행하지 않을 수 있다는 메시지만 던진 채 갈팡질팡하고 있다.

GM 본사는 지난해 유럽에 이어 인도, 호주 등 주요 시장에서 모두 철수했다. 높은 인건비와 매년 되풀이되는 강성노조와의 갈등에 시달리는 한국GM도 언제든 정리대상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많다.

완성차 업체들의 위기는 고스란히 부품사들로 전가되고 이는 완성차·부품업체가 기반을 둔 지역의 경제까지 마비시키고 있다. 실제로 올해 한국GM 군산공장이 문을 닫은 후 부품사들까지 타격을 받고 직원들이 떠나면서 군산 경제는 초토화됐다. 만약 GM에 이어 현대·기아차와 르노삼성이 판매 부진을 이유로 구조조정에 나설 경우 울산과 창원, 인천 등 주요 산업도시들의 연쇄 붕괴가 현실화 될 가능성이 크다.

자동차 산업의 상황이 이처럼 심각한데도 문 대통령은 "물 들어올 때 노를 젓자"고 생뚱한 발언을 한 것이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완성차와 부품은 국내 제조업 일자리의 약 12%를 차지할 정도로 국가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산업"이라며 "대통령 주변의 정부 관계자들이 제 입맛에 맞춘 자료만을 갖고 대통령의 눈과 귀를 막고 있는게 아닌지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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