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폐기 여부, 중성미자 검출기로 알 수 있다

김민수 기자
입력 2018.11.09 04:00
국제 과학자들이 북한의 핵 폐기 여부를 ‘유령 입자'로 불리는 중성미자 검출기를 이용하면 확인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북한 영변 지역 인공위성 이미지. 영변에는 열 출력 20MW급 원자로와 100MW급 실험용경수로(ELWR)가 설치된 것으로 추정된다. /기초과학연구원 제공
6개국 15개 연구기관의 세계적인 중성미자 과학자들의 목소리는 국제학술지 ‘사이언스(Science)’ ‘레터스(Letters)’ 코너를 통해 8일(현지 시각) 특집 기사 형태로 실렸다. 과학자들의 목소리는 남북미를 비롯해 한반도 정세에 비상한 관심을 보이는 일본과 중국, 러시아까지 북한의 비핵화 방안과 과정에 대해 미묘한 시각차를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의미있는 분석으로 평가된다.

사이언스는 9월 7일 세계적인 이슈로 떠오른 ‘북한의 비핵화’를 주제로 정책포럼을 개최하고 북한의 핵 활동을 감시하기 위한 과학자들의 아이디어를 모았다. 이번 사이언스에 게재된 특집 기사에는 한국 기초과학연구원(IBS) 지하실험연구단의 김영덕 단장과 서선희 연구위원, 김수봉 서울대 교수가 참여했다.

이번 사이언스 특집 기사에 의견을 담은 과학자들은 한국 과학자들을 포함해 6개국 17명에 달한다. IBS의 지하실험연구단을 비롯해 서울대, 매사추세츠공대(MIT), 버지니아공대, 예일대, 스탠퍼드대, 하와이대(이상 미국), 임페리얼 컬리지런던, 리버풀대(이상 영국), 독일 막스플랑크-하이델베르그 연구소, 후쿠이대, 기타사토대, 도호쿠대(이상 일본), 고에너지물리학연구소, 중산대(이상 중국) 연구진이 포함됐다. 이들은 중성미자 검출기가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기존 검증 수단의 단점을 보완한 새로운 검증도구가 될 수 있다는 의견에 한목소리를 냈다.

중성미자는 우주를 구성하는 기본 입자 가운데 가장 가벼운 입자다. 빛의 속도에 가깝게 움직이면서 전하를 띠지 않고 다른 물질과도 거의 상호작용하지 않기 때문에 관측하는 게 어려워 ‘유령 입자’로도 불린다. 빅뱅이나 초신성 폭발, 태양의 핵융합 등 자연에서 만들어지기도 하고 원자로에서 핵연료가 핵분열할 때도 만들어진다.

과학자들은 핵분열 과정에서 방출되는 중성미자의 정체를 규명하는 연구를 꾸준히 수행 중이다. 국내에서는 전남 영광에 위치한 한빛 원자력발전소에서 중성미자를 검출하는 ‘원자로 중성미자 진동 실험(RENO)’과 ‘단거리 중성미자 진동실험(NEOS)’이 대표적이다.

원자로 중성미자 진동(리노, RENO) 실험 설계. 리노(RENO, Reactor Experiment for Neutrino Oscillations) 실험은 한빛 원자력발전소 부지에서 각각 290m, 1380m 떨어진 거리에 설치된 동일한 검출기로 실험을 진행한다. 핵연료의 분열 과정에서 근거리와 원거리 검출기에는 중성미자가 검출되고, 두 검출기의 신호 차이를 분석해 중성미자의 성질을 규명하기 위해 설계됐다. /기초과학연구원 제공.
이번 특집 기사에서 과학자들은 북한 영변 원자로 주변에 중성미자 검출기를 설치한다면 원거리에서도 북한의 비핵화 여부를 검증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았다. 24시간 원자로의 가동상황은 물론 플루토늄 생성도 감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원자로에서는 1초에 1000만와트 출력당 대략 2해(2×10의 20승)개의 중성미자가 생성된다. 생성되는 중성미자의 개수가 원자로의 열 출력에 비례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역으로 중성미자가 검출된 개수를 통해 원자로의 가동여부(켜짐과 꺼짐) 및 열 출력을 추적할 수 있다. 또 핵연료로 사용된 동위원소(우라늄-235, 우라늄-238, 플루토늄-239, 플루토늄-241)의 시간에 따른 변화도 감시할 수 있다.

서선희(사진) IBS 지하실험연구단 연구위원은 "영변 지역 지형을 고려할 때 중성미자 검출기의 설치 위치에 따라 검증도구로 사용될 검출기의 종류가 달라질 것"이라며 "만약 접근제한으로 인해 1km 가량 떨어진 원거리에 설치돼야 한다면 현재 국내에서 가동 중인 검출기와 같은 종류의 검출기를 설치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설명했다.

과학자들은 실제로 이 아이디어가 실현되고 북한 과학자들의 참여로 국제공동연구를 추진한다면, 비핵화 검증은 물론 물리학적으로 가치가 높은 연구결과들을 도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핵의 평화적 이용을 담보하는 동시에 북한 과학자들이 국제무대에 함께 오르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볼 수 있다는 의미다.

서선희 연구위원은 "중성미자 검출기는 기존 검증도구와 달리 통제지역인 원자로에서 벗어나 원거리에서도 핵 활동을 모니터링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라며 "이번 사이언스 기사는 물리학의 최첨단 기술이 평화적 이용을 위한 도구로 사용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한 셈"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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