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인세 낮추자 글로벌기업 몰려와… 헝가리, 일자리 20% 늘었다

부다페스트·코마롬·세케슈페헤르바르(헝가리)=곽래건 기자
입력 2018.10.11 03:20

[제조업이 일자리다] [中] 오르반 총리, 8년째 기업유치 정책
11%대 실업률, 3.6%까지 떨어져… 월급은 65% 올라 평균 130만원

지난 6일(현지 시각) 헝가리 북부 코마롬시 도로를 달리자 헝가리말로 '첫 월급으로 세후 20만7000포린트(약 83만원)를 주겠다'고 적힌 큼직한 광고판이 눈에 들어왔다. 독일계 자동차 회사의 구인 광고였다. 세후 83만원은 세전으로 121만원. 헝가리의 대기업 공장 초봉 80만~90만원보다 훨씬 많다. '월급을 후하게 쳐줄 테니 제발 공장에 와달라'는 뜻이다. 헝가리에선 공단 지역마다 이런 광고판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1만명 일하는 아우디 전기차 엔진 공장 - 지난 7월 헝가리 북서부 죄르에 위치한 아우디 엔진 공장에서 작업자들이 전기차 엔진을 조립하고 있다. 아우디는 이 공장에서 1만명이 넘는 직원을 고용하고 있다. /블룸버그
한때 국가부도 위기까지 내몰렸던 헝가리는 8년째 이어지는 개혁 정책 덕분에 글로벌 기업들이 몰리면서 일자리 호황이 이어지고 있다. 잇따른 공장 신·증설로 인력 유치 경쟁이 벌어지면서 임금도 치솟아 경제도 덩달아 호황이다.

2010년 373만명이던 취업자 수는 올해 447만명으로 20% 늘었다. 8년 만에 헝가리 전체 인구 977만명의 7%가 넘는 일자리가 만들어진 것이다. 같은 기간 실업률도 11.2%에서 3.6%까지 떨어졌다. 2010년 7월 19만7761포린트(약 79만5000원)였던 평균 월급은 지난 7월 32만6724포린트(약 131만3400원)로 65%나 올라갔다. '일자리 주도 성장'의 성공으로 임금이 급등하는 것이다. "헝가리는 말(기업)이 마차(소득)를 견인하면서 경제를 성장시킨다는 원리를 입증하는 현장"(서강대 조장옥 명예 교수)이란 평가가 나오는 이유이다.

◇단번에 법인세 절반 이하로 감세 등 화끈한 정책들

6일 코마롬시 인근의 한 공장에선 토요일인데도 콘크리트 타설 공사가 한창이었다. SK이노베이션이 8400억원을 들여 축구장 60개짜리 부지에 전기차 배터리 공장을 짓고 있었다. 내년 말 완공되면 인구 2만명인 이 도시에서 1000명가량을 고용할 예정이다. 향후 2·3공장까지 증설하면 고용 규모는 2~3배로 커질 전망이다. SK이노베이션뿐 아니다. 독일 BMW, 콘티넨털, 일본 브리지스톤, 미국 포드 …. 올 7월 이후에만 헝가리에 투자를 발표한 글로벌 기업들의 명단이다. 올해만 그런 게 아니다. 지난해에는 96건, 35억유로(약 4조5680억원)의 외국인 투자 유치에 성공했다.
1000명 일할 SK 배터리 공장 - SK이노베이션이 헝가리 코마롬시 인근에 짓고 있는 전기차 배터리 1공장 건설 현장. 내년 말 완공되면 1000명을 고용해 연간 12만5000대분의 전기차 배터리를 생산한다. /SK이노베이션
이 같은 해외 기업들의 헝가리 러시에는 2010년 집권한 빅토르 오르반 총리가 펼친 기업 유치 정책들이 핵심 역할을 했다. 특히 지난해 19%였던 법인세를 단번에 9%로 내려 유럽 최저 수준으로 만든 것은 결정적이었다.

미국은 지난해 법인세를 35%에서 21%로 내렸고, 한국은 오히려 22%에서 25%로 올렸다. 이후 헝가리는 지난해 4.2%이던 실업률이 올해 3.6%로 확 떨어지고, 기업들이 몰려오면서 2011년 이후 3~7% 수준이었던 임금상승률이 2017년 12%로 급상승세를 보일 정도로 경제가 호황을 이어가고 있다.

헝가리투자청(HIPA) 로버트 에시크 청장은 "감세 정책을 펼쳐도 일자리가 늘면 오히려 정부 세수가 늘어난다는 게 우리 생각"이라며 "실제로 세금을 낮췄지만 일자리가 늘면서 정부 세수가 늘었다"고 말했다. 각종 사회보험을 위해 고용자가 근로자 임금의 27%를 내던 '사회기여세'도 지난해 22%, 올해 19.5%, 내년 17.5%로 매년 감면되고 있다. 외국인 투자자에겐 투자금의 최대 50%를 현금과 세금 혜택 등을 통해 돌려주고 있다.

◇소득 늘어나니 살아나는 소비 시장

고용시장도 확연히 달라지고 있다. 세케슈페헤르바르 지역에 전기차 부품 공장을 운영하는 한온시스템(옛 한라공조)의 카리코 즈솔트 법인장은 "증설에 따라 추가 채용을 해야 하지만 실업자가 거의 없어 웃돈을 주고 다른 공장 직원이라도 데려와야 할 처지"라고 말했다. 임금 인상을 노조가 아닌 기업들이 주도하는 점도 우리와는 다른 상황이다.

소비 시장도 활성화되고 있다. 지난 4일 부다페스트 시내에 있는 웨스트엔드 쇼핑몰엔 평일 낮시간인데도 사람이 넘쳤다. 쇼핑몰 입구엔 미국 포드사가 최근 출시한 신형 'ST 라인' 세단을 비롯해 최고급 휴대폰이 전시돼 있었다. 회사원 크세크 크센지(22)씨는 "일주일에 한 번은 꼭 쇼핑하러 들른다"고 말했다. 여기에 입점한 패스트패션 의류 브랜드 '풀앤베어'는 매출이 작년보다 2배 늘었다. 2012년 전년 대비 -2%를 기록했던 헝가리의 소비 지출은 올해 5% 올랐다.

신차 판매도 마찬가지다. 헝가리는 그동안 소득이 낮아 신차보다는 서유럽에서 넘어온 중고차 거래가 활발했던 국가다. 그러나 2010년 4만3476대이던 신차 판매량은 지난해 11만6249대로 267% 늘었다. 헝가리의 한 자동차 판매점에서 만난 직원 아틸라 가즈도스(28)씨는 "취급하는 일본 차가 유럽 저가 브랜드에 비해 비싼데도 손님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고 말했다. 공장, 쇼핑몰, 사무실 수요가 늘어나며 건설 경기도 호황이다.

조장옥 서강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한국도 정부 주도가 아니라 민간 투자를 유도해 일자리와 소득 등을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A10면
네이버구독하기

오늘의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