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 inside] 울먹거린 김상조

이준우 기자
입력 2018.10.11 03:08

조회서 "죄송… 감사… 부탁" 재취업 비리로 공정위 뒤숭숭
직원 사기 진작 방안 발표, 일부 "근본 해결책 안될듯"

"내·외부의 어려운 상황이 있더라도 저를 믿어 주십시오. 위원장으로서의 책임을 회피하지 않겠습니다. 처음 공직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의 초심을 잊지 맙시다."

10일 정부 세종청사에서 공정거래위원회 소속 공무원 600명이 전원 참석한 비(非)정기 조회가 열렸다. 이날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과 공정위 직원들은 시종일관 무거운 표정이었다. 김 위원장은 A4 용지 8장에 달하는 조회사를 읽어내려가는 도중 때때로 울먹거리며 말을 잇지 못하기도 했다. 이날 김 위원장의 조회사는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 부탁합니다. 그리고 함께 갑시다"라는 문구로 끝을 맺었다. 재계에선 '저승사자'란 별명으로 통하는 김 위원장이 직원들 앞에서 간곡하게 머리를 숙인 것이다. 공정위에서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재취업 비리 수사로 사기가 떨어진 공정거래위원회 공무원을 격려하기 위해 10일 전 직원을 대상으로 비(非)정기 조회를 열었다. 김 위원장은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 부탁합니다. 그리고 함께 갑시다”라고 말했다. /뉴시스

"어디 가서 '공정위 소속'이라고 말하는 것이 창피하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최근 공정위의 사기는 땅에 떨어진 상태다. 발단은 지난 6월 시작된 검찰발(發) 재취업 비리 관련 수사였다. 공정위 전·현직 간부 12명이 퇴직 공무원의 재취업을 부당하게 도운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졌다. 기업의 불공정거래를 감시하는 공정위가 도리어 기업 관련 수사 대상에 오른 것이다. 또 공정위가 독점해 온 '전속고발권'을 포기하고, 공정거래법 위반 기업에 대한 수사 권한을 검찰과 나눠 갖기로 합의하면서 공정위 내부에선 '굴욕적'이란 이야기까지 나왔다. 공정위가 검찰 수사에 백기를 들고 전속고발권을 '상납'했다는 얘기도 나왔다.

김 위원장은 지난 7월 직원 조회를 소집해 "검찰 수사에 대한 책임은 내가 질 테니 직원들은 성실히 본분을 다해달라"고 격려했지만 한번 꺾인 사기는 좀처럼 회복되지 않았다. 현재 인사혁신처에 "다른 부처로 전출시켜 달라"고 신청한 공정위 직원은 평상시의 두 배인 60여명에 이르고 있다. 전체 조직원의 10%가 '나가고 싶다'는 의사를 공식적으로 표출한 것이다.

김 위원장은 이날 직원들 앞에서 사기 진작 방안을 직접 발표했다. 과장급 이상 간부들에 대한 상향식 평가를 도입하고, 성과가 좋은 직원에게 포상휴가 등 확실한 인센티브를 부여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효과가 있을지는 미지수다. 공정위 관계자는 "직원들 사기 저하는 검찰 수사와 전속고발권 포기가 가장 큰 영향을 끼쳤지만, 과다한 업무량·인사 적체로 인한 승진 기회 박탈·불확실해진 퇴직 이후 재취업 전망 등 다양한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며 "이번 방안이 근본적 해결책은 안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B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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