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자 대변한다는 약속 믿었는데… 정부가 우릴 버렸다"

임경업 기자
입력 2018.07.13 03:07

최저임금 인상 불복종 투쟁 나선 최승재 소상공인연합회 회장

"지금도 소상공인들은 편의점에서, 식당에서 부부가 맞교대를 하고 공무원보다 더 많은 시간을 일하면서도 적은 소득을 올리고 있습니다.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 주 52시간 등 모든 노동 정책에서 우리는 소외돼 있습니다. 소상공인을 '악덕 자본가'로 보는 운동권적 접근을 멈추고 벼랑 끝에 내몰려 있는 소상공인들을 위해 문재인 대통령이 나서길 바랍니다."

11일 밤 10시 서울 동작구 소상공인연합회에서 열린 긴급 노동인력환경분과위원회 회의를 마치고 나온 최승재〈사진〉 소상공인연합회 회장의 얼굴은 붉게 상기돼 있었다. 연합회는 편의점·주유소·수퍼마켓·미용실 등 70여 개 업종의 소상공인 협회·조합을 대표한다. 최승재 회장은 경기도 시흥에서 컴퓨터 부품 도·소매상을 운영하고 있고, 올해 3월 연임에 성공해 2021년까지 연합회를 이끈다. 그는 본지 단독 인터뷰에서 "내년 최저임금도 일괄적으로 오른다면 전국 소상공인들은 최저임금 지불 유예, 거리 시위 등 불복종 투쟁에 나설 것"이라며 "이건 협상을 위한 허풍이 아니고 '이대로 망할 바에야 범법자라도 되겠다. 잡아갈 테면 잡아가라'는 절박한 생존 투쟁"이라고 말했다.

소상공인연합회는 지난해 대선 당시 공식적인 지지 후보를 밝히진 않았지만, 연합회 산하 단체 회원 1만여 명은 "상생 경제 정책을 약속한 문재인 후보가 소상공인을 당당한 경제 주체로 서게 해줄 것"이라며 지지를 선언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불복종 투쟁을 택한 이유는?

"소상공인 업종 중에서 최저임금을 못 받는 근로자가 30% 내외다. 여기서 임금을 더 올린다? 영세 가게들은 근로자를 내보내다 경쟁력을 잃고 도산할 것이다."

―최저임금위원회에서 합의를 보는 방법도 있지 않나?

"최저임금위가 일방적인 방향으로 흐르는 것을 더는 두고 볼 수 없다. (정부가 선정하는) 9명의 공익위원이 모두 친(親)노동계 성향으로 구성돼 있고 중재자 역할도 제대로 하지 않는다. 절차적 정당성을 상실한 의사 결정 과정이다. 노동계는 자영업자를 자본가이자 노동자의 적(敵)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임금 근로자의 소득이 소상공인의 소득을 역전한 상황이고, 주 52시간 근무가 보장되는 (대기업) 근로자보다 소상공인이 더 많은 시간을 일한다. 소상공인은 '노동자형 자영업자'일 뿐이다. 사업을 하면 전부 부자고 탐욕스러운 악덕 자본가냐?"

―'최저임금을 못 주는 가게는 어차피 망할 가게'라는 시각도 있다.

"퇴직한 세대들이 자영업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이런 자영업자들이 대부분 영세할 수밖에 없는 것이 한국의 척박한 경제 생태계다. 소상공인들이 가게를 접으면 여기서 일하는 취약 계층 근로자들도 일자리를 잃는다. 모든 고용지표가 마이너스인 상황에서 이들을 포용할 일자리도 없다. 경제 시스템을 개선하지 않고 왜 취약 근로자와 소상공인을 함께 죽이려고 하는가."

―최저임금 지급을 이행하지 않으면 모두 범법자가 될 수 있다.

"(최저임금을) 안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못 받아들이는 것이다. 임금 인상으로 비용 감당을 못할 바에는 법을 어겨서라도 살아남고자 하는 것이다. 감옥에 보낸다면 과연 이번 최저임금 결정은 절차적으로 정당했는지 정부에 묻고 싶다."

―정부에 무엇을 바라나.

"이제는 문재인 대통령이 전면에 나와 최저임금 인상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겠다는 문 대통령에 대해 기대를 건 소상공인들이 많았다. 폐업 위기에 몰리고 정부의 노동정책으로부터 혜택을 받지 못하는 소상공인이야말로 사회적 약자다. 최근 태국의 동굴 소년 구조는 국가가 나서 벼랑 끝에 놓인 약자를 구했기 때문에 세계적인 감동을 줬다. 지금 현장의 소상공인들은 하나같이 '국가로부터 버림받았다'는 감정을 느끼고 있다. 왜 우리만 희생하고 국가로부터 보호를 받을 수 없나."

―소상공인 현장의 분위기는 어떤가?

"지난해부터 소상공인들은 '열심히 일해도 나아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절망하게 됐다. 희망조차 없는 우리를 정부가 고사시키고 있으니 싸우는 일밖에 남지 않았다."


조선일보 A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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