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돈만으로 할 수 없는 일

전성필 경제부 정책팀 기자
입력 2018.06.27 06:00
최근 유튜버(유튜브용 콘텐츠 제작자) 양예원씨 폭로로 ‘비공개 촬영회’ 사진을 인터넷에 유포한 음란 사이트가 적발됐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피해 여성들로부터 의뢰를 받아 유포된 사진을 삭제해 주는 ‘온라인평판관리(디지털장의사)’ 업체와 이 음란 사이트가 유착 관계를 맺고 있다는 정황이 나왔다.

부산경찰청은 지난 19일 올해 1월부터 모델 등 여성 154명의 스튜디오 비공개 촬영 유출 사진을 음란 사이트에 올린 혐의로 운영자 강모씨 등 7명을 구속하고, 불법 유출된 사진 삭제를 독점해달라고 부탁한 온라인평판관리 업체 대표 박모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에 따르면 박씨는 강씨에게 “‘윈윈’하고 싶다”며 600만원을 건네고 음란사이트에 자신의 업체를 표출해줄 것을 요청했다. 박씨의 온라인평판관리 업체는 음란 사이트 공지사항에 삭제대행사로 소개됐다. 박씨는 피해자들로부터 돈을 받고 강씨의 음란 사이트에 올려진 피해자 사진을 삭제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같은 소식을 접하고 마음 한켠이 매우 아팠다. 작년 2월 ‘[新직업열전] 당신의 과거를 지워드립니다…인터넷에서 흔적 없애주는 '온라인평판관리사'’ 기사를 통해 온라인평판관리사를 유망 직업으로 소개했기 때문이다. 기사에서 돈을 얼마 벌 수 있는지 경제적 가치에 대해선 설명했지만, 직업적 지위를 잘못 활용하면 어떤 문제가 발생할지에 대한 위험성은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다.

또 기사를 통해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을 뿐, ‘높은 수준의 윤리성’을 필수적으로 갖춰야 한다고 강조하지는 않았다. 부도덕한 이들이 기사를 접하고 돈벌이를 위해 온라인평판관리사라는 직업을 택했을 수도 있다는 죄책감이 들었다.

늦었지만 온라인평판관리사는 일반인 이상의 도덕성과 윤리의식을 갖춰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만약 온라인평판관리사의 윤리의식이 부족할 경우 직업적 지위를 악용해 얼마든지 2차 가해자로 돌변할 수 있다. 이번 사례처럼 음란 사이트와 결탁해 피해자들의 고통을 돈벌이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는가 하면, 최악의 경우 온라인평판관리사가 오히려 유출자가 될 위험성도 있다.

온라인평판관리사는 의뢰인들이 삭제를 요청한 사진이나 영상을 샘플로 보관하며 샘플과 유사한 게시물을 인터넷에서 찾아 삭제한다. 인터넷에 떠돌아 다니는 게시물을 모두 지웠다 하더라도 마지막 샘플을 온라인평판관리사가 가지고 있다는 의미다. 온라인평판관리사가 샘플을 안전하게 폐기하면 다행이지만, 나쁜 마음을 먹는다면 얼마든지 새로운 유포자가 될 가능성이 상존하는 것이다.

온라인평판관리사는 단순히 돈만 버는 유망 직업이 아니다. 몰카 피해자나 사생활이 유포된 피해자들을 고통으로부터 해방시켜주고, 불특정 다수에게 신상 정보가 노출된 이들의 ‘잊힐 권리’를 보장해주는 정의로운 직업이다.

한 온라인평판관리사는 “며칠에 걸쳐 인터넷에 유포된 몰카 영상을 지우는 사이에 피해자가 자살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엄청난 두려움과 함께 죄책감을 느낀 적이 있다”고 말했다. 때로는 피해자의 생명을 구하는 소방관 역할을 할 정도로 직업적 사명감이 강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는 윤리의식을 갖춘 온라인평판관리사가 양성될 수 있도록 최소한의 관리·감독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가령 온라인평판관리사 등록제를 통해 업체와 관리사를 관리하거나, 성범죄자 취업제한 직종으로 지정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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