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부총리는 혁신성장 중심"…文대통령, J노믹스 역할분담 굳히나

세종=정원석 기자
입력 2018.05.31 18:30 수정 2018.05.31 20:09
소득주도성장 장하성 정책실장, 공정경제 김상조 위원장 전담
김동연 부총리, 경제 컨트롤타워 위상 흔들?…“비효율적 역할분담” 비판↑

“성장의 동력을 만들어내는 데 있어서는 혁신성장이 가장 중요합니다. 우리 경제부총리를 중심으로 경제팀에서 더욱 분발해 주시고 더욱 규제혁파에도 속도를 내주시기 바랍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31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역할에 대해 이같이 언급했지만, 경제 컨트롤타워에 대한 논란은 지속될 전망이다. 경제정책 전반을 관장하는 경제부총리의 역할을 혁신성장을 책임지는 역할로 국한한 것 아니냐는 시각에 힘을 실어주는 결과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청와대는 지난 29일 가계소득 점검회의 후 발표한 서면 브리핑에서 “앞으로 장하성 정책실장이 함께 관련 부처 장관들과 함께 경제 전반에 대해 자유롭게 토론하고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회의를 계속 개최하기로 했다”고 발표해, 장하성 실장이 소득주도성장을 주도할 구상임을 시사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29일 청와대에서 경제관련 부처 장관 및 청와대 참모들과 함께 '가계소득동향 점검회의'를 열었다. /청와대 제공
문재인 대통령은 정부 내 재벌·금융개혁을 주도할 경제민주화 TF(태스크포스)는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에게 맡기기로 하고, 공정위 내부에 관련 준비조직을 구성하도록 조치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재인 정부 경제정책인 ‘제이(J) 노믹스’의 3대 축인 소득주도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가 각기 다른 컨트롤타워에서 추진되는 모양새가 연출됐다.

일각에서는 이날 발언이 혁신성장은 김동연 부총리, 소득주도성장은 장하성 실장, 공정경제는 김상조 위원장에게 책임을 맡기는 역할 분담을 공식화했다고도 분석한다.

실제로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날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으로 김동연 부총리의 경제정책 주도권에 힘이 빠질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익명을 요청한 한 경제학 교수는 “정부의 핵심 정책들을 분산시켜 추진하는 경우는 처음 본다”면서 “소득주도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 3가지 정책 모두 기재부가 관장하는 재정, 세제정책의 뒷받침을 받아야 추진력이 생기게 되는데, 이런 구조로는 효율적인 정책추진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다른 행정학 교수는 “정부조직법상 경제정책 조정권은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있다”면서 “정식 장관도 아닌, 장관급 공무원인 청와대 정책실장과 공정거래위원장이 상급자인 경제부총리를 지휘해서 정책을 추진하는 것은 듣지도보지도 못했다”고 말했다.

게다가 이날 문 대통령은 김 부총리의 책임 영역으로 지목한 혁신성장에 대해 “우리 정부 출범 1년이 지나도록 혁신성장에선 아직 뚜렷한 성과와 비전이 보이지 않는다는 평가가 많다”면서 아쉬움을 나타냈다. 반면 김 부총리는 전날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기획재정부 확대간부회에서 “그동안 혁신성장 추진에 있어 정부 내에서 일부 제약이 있었다”고 밝혀 문 대통령과의 시각 차이를 나타내기도 했다.

정부 안팎에서는 김 부총리가 소득분배 지표 악화 원인과 최저임금 속도조절 등에 대해 청와대 경제참모들과 시각차를 나타낸 상황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참모들의 시각에 손을 들어줬다는 것에 주목하고 있다.

김 부총리는 지난 29일 가계소득점검회의에서 “올해 1분기 소득 하위 20%(1분위) 소득이 감소한 데는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최저임금 인상 등의 영향이 있을 수도 있으므로 열린 마음으로 검토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청와대 참모진과 다른 참석자들이 최저임금 인상과 소득분배 악화의 연관성을 언급한 김 부총리 발언을 일제히 비판한 것으로 전해졌다.

2017년 6월 21일 정부 서울청사에서 열린 문재인 정부 첫 경제 현안 간담회에 참석한 김동연(가운데) 경제부총리와 장하성(왼쪽) 청와대 정책실장, 김상조(오른쪽) 공정거래위원장이 나란히 손을 잡고 있다. 이날 처음으로 회동한 세 사람은 “경제팀이 원 팀(One team)으로서 한 목소리(One voice)를 내겠다”고 했다./조선일보 DB
문 대통령은 올해 최저임금 16.4% 인상 등 소득주도 성장정책에 대해 “일부 부작용이 있었지만 성과가 있었다”라는 긍정적인 평가를 내놨다. 그는 “최저임금 인상이 미친 영향에 대해서도 더 시간을 가지고 심도 있게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면서도 “근로자가구의 소득은 모든 분위에서 증가했지만 근로자외 가구의 소득 감소가 가구소득격차 확대의 중요 원인으로 분석된다”고 말했다. 김 부총리와 청와대 참모들 간의 논쟁에서 청와대 참모들의 손을 들어준 셈이다.

통계청의 가계동향 조사에 따르면 지난 1분기 전국 가구 소득 하위 20%의 소득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8.0% 감소하고 상위 20% 소득은 9.3% 증가했다. 하지만 근로자가구만 놓고 봤을 때 하위 20%의 소득도 0.2% 증가했다. 근로자가구 상위 20%의 소득은 10.2% 늘었다. 문 대통령은 “고용근로자들의 근로소득 증가와 격차 완화, 그리고 중산층 가구의 소득증가는 올해 최저임금 인상의 긍정적 효과”라면서 “이는 올해 최저임금 인상을 결정할 때 우리가 기대했던 효과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고 밝혔다.

다만, 문 대통령은 “저임금 근로자의 고용이 줄거나 근로시간이 줄어들어 소득을 감소시킬 가능성이 있다면 그것은 최저임금 인상의 부작용일 수 있으므로 정부는 그에 대한 보완대책을 강구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의 이 같은 언급 이후 저소득층 소득지원 확대와 이를 위한 재원 마련 방안을 준비해야 한다는 발언이 쏟아졌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최저임금 인상이 소득분배개선에 가장 효과적이라는 것은 이미 입증된 사실”이라면서 “급속한 고령화와 높은 임시·일용직 비중, 자영업자의 과당 경쟁 등으로 인한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재정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도 “고령화에 대한 대책 마련을 본격적으로 고심해야 하며. 세수 확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본격적 검토 필요하다”는 의견을 개진했다. 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최근 나타난 저소득층의 소득악화는 소득주도성장을 강화해야 하는 이유”라면서 “근로장려세제(EITC)를 확대하거나 기초연금 인상 시기를 앞당기는 등의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 정부 관계자는 “문 대통령이 혁신성장에 대해서는 김 부총리의 주도적인 역할을 인정해주기는 했지만, 가장 뜨거운 핵심 현안인 최저임금 인상 효과에 대해 청와대 참모진의 의견에 손을 들어준 것이 김 부총리 입장에서는 아쉬운 대목이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시지가

오늘의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