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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석재 기자의 돌발史전] '韓日의정서'는 왜 실검에 올랐나

문화 유석재 기자
입력 2018.09.12 03:01
유석재 기자

서슬 퍼런 기세의 일본 낭인이 한국 외부대신 이지용 목에 칼을 들이댄다. 일본 공사 하야시는 "문서에 서명하라"고 위협한다. 지난 주말 방송된 tvN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한 장면이다. 문서는 1904년 2월 23일 체결된 '한일의정서'였고, 방송 직후 인터넷 실시간 검색어에 올랐다. 도대체 무슨 문서길래?

"짐은 사실상 일본인의 포로가 됐으며 권력을 행사할 모든 기회를 박탈당했다…." 서울을 탈출하는 러시아 공사 파블로프에게 고종은 한탄했다. 조약 체결 15일 전 러일전쟁이 발발했고 다음 날 일본은 서울을 점령했다. 대한제국의 중립 선언이 휴지 조각이 된 상황에서 일본은 한국을 전쟁 기지로 만들기 위한 조약을 강요했다. 이것이 한일의정서, 일명 '갑진늑약'이다.

대신의 목에 칼까지 들이댔다는 드라마의 설정은 과장이다. 외부대신 이지용은 이미 일본에 포섭된 친일파였다. 하지만 한국 정부에 엄청난 강압이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의정서 체결을 반대한 탁지부 대신 이용익 등 고종의 최측근 인사들이 일본으로 납치됐던 것이다.

일본 낭인이 대한제국 외부대신에게 '한일의정서' 서명을 강요하는 '미스터 션샤인'의 한 장면. /tvN

의정서의 내용은 한마디로 '종합 침략 세트'였다. 1조 '한국은 시정 개선에 관한 일본 정부의 충고를 쓸 것'(너희 내정은 이제부터 우리가 휘어잡을게), 4조 '일본은 유사시 한국 내 군략상 필요 지점을 수용할 수 있다'(한국 영토를 군사적으로 정복해도 찍소리 하지 마), 5조 '승인 없이 본 협약에 위배되는 협약을 제3국 간에 체결할 수 없다'(너흰 이제 외교 같은 건 안 해도 돼)였다.

한데 당시 서울의 분위기는 특이했다. 안중근은 "한국인은 (러일전쟁에서) 일본의 승리를 마치 자국이 승리한 듯이 기뻐했다"고 회고했고, 남궁억은 "개전 초에 남녀노유가 일병(日兵)을 환영해 집안 사람이나 형제가 상봉함과 같았다"고 했다. 아직도 일본의 침략 본심을 눈치채지 못한 한국인에게 '황인종이 단결해 백인 열강을 물리치자'는 논리가 일부 먹혀들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 달콤한 환영 무드 속에서 일본이 내민 것은 동양 평화의 깃발이 아니라 날을 세운 침략의 비수(匕首)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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