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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시각] 누가 투기꾼인가

오피니언 장상진 산업1부 기자
입력 2018.09.12 03:13
장상진 산업1부 기자

'회사원 A씨는 서울 마포구 아파트에 월세로 산다. 보증금 5000만원에 월세 220만원을 낸다. 그가 최근 강남권 아파트 청약에 당첨됐다. 곧 사십 평생 처음으로 자기 이름 아파트를 갖는다. 하지만 거기에 들어가 살 생각은 없다. 광화문 직장에서 멀기 때문이다. 대신 전세를 받아 분양 대금을 치르려 한다. A씨는 실수요자인가, 투기꾼인가.'

작년 8·2 부동산 대책 발표 직후 정부의 주택 정책 담당 고위 공무원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월세 살던 분이 생애 첫 주택을 가지는 건데 실수요자다."

그의 대답은 칼로 두부를 자르는 것처럼 거침이 없었다. 거기에 패착(敗着)이 있었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과 동시에 주택 투기와 전쟁에 매달렸다. 타깃은 '집값 올리는 투기꾼'이었다. 이들을 '선량한 실수요자'와 구분하겠다며 가져다 쓴 프레임(틀)이 '다(多)주택자'와 '강남'이었다. 2016년 기준 서울 시내 총가구 수는 378만. 그중 집을 여러 채 가진 가구는 37만으로 10%가 채 안 된다. 그 지점을 향해 정부는 모든 화력(火力)을 쏟아부었다.

그 후 1년. 성과는 없었다. 서울 아파트값은 1년 새 16% 올랐다. 강남발(發) 과열은 이제 서울 전역과 신도시로 번졌다.

왜일까. 그간 청와대·정부 핵심 인사들 발언을 종합하면 투기꾼은 다음과 같은 사람이다. '20대 나이에 수십억원짜리 강남 아파트를 매입한 금수저' 또는 '탐욕스럽게 여러 채 집을 사들이는 사람'. 나머지는 '실수요자' '무주택자' '전·월세 난민(難民)'이라고 그들은 불렀다.

이런 이분법(二分法)을 현실에 적용해보자. 살지도 않을 아파트에 청약해 프리미엄 상승을 기대하는 회사원 A씨는 '불쌍한 월세 난민'이다. 당장 부모 집에 얹혀살면서도 앞으로 영영 서울 집을 못 살까 봐 전세를 끼고 강북 아파트를 사들인 청년은 '선량한 실수요자'다. 심지어 값이 내리는 지방 아파트를 싹 다 팔고 서울 아파트를 사러 상경한 노인도 '그냥 무주택자'일 뿐이다. 하지만 실제 현장에선 이런 이들이 집값을 끌어올린다.

투기꾼의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다. 국토부 장관은 "아파트를 돈으로 보지 말라"고 했지만, 서울 아파트값이 안 오르던 2013년에 집을 산 사람은 작년의 60%에 불과했다. 지금의 가격 폭등 뒤에는 '가격이 오를 것'이라는 불안 외에도 '집으로 돈 벌고 싶다'는 욕망이 꿈틀거리고 있다.

정부가 여기까지 인정한다면 남은 선택은 두 가지, 전 국민을 투기꾼으로 몰아 가혹하게 규제하거나, 공급을 늘리면서 여윳돈을 투자할 건전한 경제 환경을 만들어주거나이다. 전자는 표(票)를 잃을 일이고, 후자는 잘못된 판단을 인정하는 일이다. 둘 다 용기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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