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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남북] 독방에 갇힌 과거 정부 사람들

오피니언 이동훈 디지털편집국 정치부장
입력 2018.09.12 03:15

운동·접견 외엔 독방살이 하며 '적폐' 주홍글씨에 잠 못 이뤄
국정 운영 '허당'인 現 정부도 3년 뒤에 대한 두려움 지녀야

이동훈 디지털편집국 정치부장

이른바 박근혜 정부 국정 농단 사건에 연루돼 옥살이하다 풀려난 인사 몇 명을 최근 만났다. 막 구치소에서 풀려난 사람을 만나면 대개 그렇듯 그곳 일과를 주제로 대화가 시작된다. 독방살이 했던 국정 농단 연루 인사들의 일과는 단순했고 비슷했다. 운동과 접견 2시간을 빼고 종일 2평 남짓 독거실에 갇혀 있었다고 했다.

22시간 동안 침대 크기만 한 공간에 홀로 갇히면 먹고 자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일이 신문 보기, 책 읽기, 그리고 생각이다. 3부까지 구독할 수 있는 신문을 여러 시간에 걸쳐 여러 차례 읽다 보면 기사 쓴 기자도 찾기 어려운 오탈자를 찾아내고, 바깥사람도 모르는 바깥사람 동정을 아는 경지에 이른다고 했다. 신문을 통해 검찰 수사의 방향을 가늠하는 나름의 지혜도 생긴다. A씨는 "검찰이 신문에 이미 난 사안을 조사한다고 부르면 나는 참고인이었지만, 신문에 나지 않은 사안으로 소환하면 핵심 피의자였다"고 했다.

일반 형사범과 달리 국정 농단 연루범들은 비교적 먼 과거의 자기 행적을 되짚어 재구성해 내야 한다. 검사는 기억을 되살릴 걸 집요하게 요구했다고 한다. B씨는 정권에 함께 몸담았던 사람들이 동일한 사건을 두고 상이한 기억을 하는 게 고통스러웠다고 했다. 검사가 들려주는 다른 사람의 다른 진술을 듣고 기가 막혔던 경우가 적지 않았다고 했다. 그런 날이면 종일 독방에 앉아 과거 어느 하루를 반추하며 퍼즐을 맞춰야 했고, 어김없이 밀려드는 회한에 전전반측(輾轉反側)했다고 한다. C씨는 식구와 동료들에게 드리웠을 '적폐' 주홍글씨에 잠을 못 이룰 때가 많았다고 했다. "청와대 후배들이 직장도 못 구하고 백수 생활을 한다는 소식에 상심이 컸다"고 말했다. 구치소에서 풀려난 그는 이제 자신의 가슴에 아로새겨진 주홍글씨를 절감하고 있다.

비단 박근혜 정권 사람들에게만 해당하는 일은 아닐 것이다. 자랑스러운 이력, 혹은 주홍글씨일 수 있는 '○○○정부 출신' 명찰을 가슴에 붙이고 과거를 반추하며 살아야 하는 것은 정권에 몸담았던 인사들의 숙명일 게다. 그건 감옥에 있든 밖에 있든 다를 리 없고, 어느 정권이라고 예외가 있을 리 없다. 문재인 정부 사람들도 '문 정부 출신'이란 명찰을 달고 지난날을 되새기는 순간이 올 것이다. 과연 "나는 문 정부 사람이었다"고 떳떳하게 얘기하고 다닐 수 있을까.

이 정부는 지난 16개월간 전(前) 정부, 전전 정부의 속살을 후벼 파는 데는 탁월한 능력을 보였다. 하지만 다른 분야에선 그렇지 못했다. 허황한 좌파적 이상이 매번 현실의 벽에 부닥쳤는데 기어코 넘겠다고 부리는 오기가 가관이다. 국정 운영에선 '허당' 냄새가 풀풀 풍기는데 편 가르고 내 사람 챙기는 대목에선 옹골차다. 알알이 박아 넣은 낙하산 인사, 통계가 맘에 들지 않는다고 통계청장을 찍어내는 행태에선 '파렴치'란 말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그나마 성과로 여겨졌던 남북관계에서도 실속 없는 과대 포장의 허망함이 고개를 들고 있다.

어느 해보다 가혹한 여름을 보낸 과거 정부 인사들은 곧 독방에서 차가운 겨울을 맞는다. 겨울 옥살이 경험이 있는 B씨는 "난방을 한다지만 겨울 독방에 누우면 척추를 타고 내리는 서늘한 기운에 깜짝 놀랄 때가 있다"고 했다. 그런 기운을 느껴야 할 사람이 독방에 갇힌 과거 정부 사람들뿐일까. 현 정부 사람들도 그런 서늘한 기운 속에 하루를 지냈으면 한다. 3년여 뒤 자신이 달게 될 명찰에 대한 두려움으로 남은 임기를 보냈으면 한다. 과거 정부 인사들이 쓰디쓴 과거를 곱씹는 구치소 풍경을 더는 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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