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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민노총의 판사 집단 협박, 대법원장은 같은 편이라 침묵하나

오피니언
입력 2018.09.12 03:18

대법관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시·군법원 판사로 재임용된 박보영 전 대법관의 출근길이 민노총의 시위로 엉망이 됐다. 민노총 조합원을 비롯한 30여명이 여수시법원 정문에 진을 치면서 박 판사는 경찰이 통로를 확보한 뒤에야 출근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박 판사가 경호 인력 등에 엉켜 비틀거리고 안경이 바닥에 떨어지는 일도 벌어졌다. 박 판사는 취임식을 취소했다.

박 판사는 올 1월 대법관에서 물러난 뒤 전관예우를 마다하고 서민을 상대로 하는 소액 재판을 맡겠다며 시골 판사를 자원했다. 많은 국민이 신선하게 받아들였다. 그러나 민노총은 박 판사가 대법관 시절 재판한 쌍용차 정리해고 판결이 청와대와 '거래' 의혹이 있다며 "이명박·박근혜의 부역자"라고 비난했다.

터무니없는 얘기다. 해당 판결을 '정부 운영에 대한 사법부의 협력 사례'로 꼽은 법원행정처 문건은 판결이 있은지 1년 뒤 작성됐다. 이미 끝난 판결로 어떻게 거래를 하고 흥정을 하나. 사법부 권력을 잡은 진보 판사들도 과거든 지금이든 누군가 대법관에게 판결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박 판사가 당하는 장면을 본 판사들은 누구든 남의 일 같지 않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근래에 판사들에 대한 무차별 공격은 유례없이 빈발하고 있다. 인터넷에서 이뤄지는 재판장 신상털이, 욕설과 비난은 일상적이다. 대기업 총수에게 집행유예 판결을 내린 재판부를 향해 여당 의원은 "침을 뱉고 싶었다"고 했고, 전직 여당 의원은 "법복을 벗고 식칼을 들어라"고 했다. 법원 게시판에 '(석궁으로) 진심 쏘고 싶다'고 쓴 법원 직원도 있었다. 청와대는 해당 재판장을 파면하라는 국민 청원을 대법원에 전달했다. 그러더니 이제 말로 하는 협박이 아니라 물리적 위협까지 가해지고 있다. 판사들이 소신껏 재판할 수 없는 사회는 민주사회가 아니다.

대법원장은 취임사에서 "법관 독립을 침해하려는 어떠한 시도도 온몸으로 막아내겠다"고 했다. 하지만 '청와대 청원' 때도, 이번 박 판사 사건에도 아무 말이 없다. 민노총이 같은 편이라고 침묵하는 건가. 얼마 전 구속 만기로 일시 석방된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에게 집단 린치가 가해지는데 경찰이 수수방관했다. 법치를 유린하는 현장을 사법부 수장과 공권력이 모른 척한다면 법치 국가, 민주 국가가 아니라 주먹 국가, 폭력 국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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